이춘재 스포츠부장
2002년 부산장애인아시안게임을 취재하러 갔을 때 운 좋게 선수촌에서 묵은 적이 있다. 지금은 부산에서 인기있는 아파트가 된 선수촌의 30평대 숙소를 장애인스포츠 국가대표팀 코치진과 함께 썼다. 첫날 피곤에 절어 초저녁에 곯아떨어졌다가 한밤중에 기겁을 하고 깨어났다. 인기척에 눈을 떠보니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한 사내가 갑자기 자신의 왼쪽 다리를 뚝 떼어내는 게 아닌가. 잠결에 그 모습은 마치 한 편의 공포영화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낮에 인사를 나눌 때 그가 의족을 했을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룸메이트’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불도 켜지 않은 채 옷을 갈아입던 그는 몹시 미안해했다. 나는 “화장실에 가려던 참이었다”고 둘러댄 뒤 서둘러 잠을 청했지만 단잠은 이미 멀리 달아난 뒤였다.
나중에 이 얘기를 아내한테 우스갯소리로 했다가 한소리 들었다. “장애인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기사 쓰던데 뭐 그깟 일에 놀라고 그래?” 아차 싶어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장애인스포츠를 인간승리나 감동의 드라마로 묘사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 정작 나 자신이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소홀했던 것이다.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그 코치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장애인스포츠를 취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선수들의 훈련과 경기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는다. 인간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신체적 장애 따위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들은 실제로 입증해 보인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일상의 근심거리들도 이들 앞에선 하찮은 것들에 불과하다. 다섯 수레 분량의 책에서도 얻지 못하는 살아있는 교훈이다.
2012년 런던 시민들은 올림픽 뒤에 열린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을 보기 위해 너도나도 아이들 손을 잡고 경기장을 찾았다. 전체 입장권 250만장 가운데 무려 242만장이 팔려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세운 대회였다. 영국 <채널4>가 생중계한 개회식의 시청률은 이 채널이 지난 10년 동안 방송한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았다고 한다. <비비시>(BBC)는 “모든 사람은 똑같다는 것을 배우라고 아이를 데려왔다”는 한 시민의 말을 전했다. 런던시는 올림픽파크에 장애인스포츠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다. 패럴림픽을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한 것이다. 대회 기간 동안 야외 응원까지 펼쳐진 올림픽파크를 방문한 인원은 100만명이 넘었다.
18일 개막하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은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에 실패한 인천시가 체면을 살릴 좋은 기회다. 런던의 사례를 본받는다면 1988년 서울 대회를 능가할 수 있다.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아니냐’고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런던은 패럴림픽이 끝난 뒤 자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패럴림픽 메달리스트들이 함께 카퍼레이드를 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대회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살리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
인천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아시안게임과 장애인아시안게임의 재정에 보태기 위해 스포츠토토를 추가 발행해 42억원을 마련한 뒤 절반씩 나눠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김영수 아시안게임조직위원장이 대회 적자를 핑계로 전액 지원해달라고 떼를 썼다는 후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절반씩 나눠 갖기로 했다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아무리 돈이 급하기로서니 한 푼이라도 더 지원해야 할 장애인스포츠 지원금을 탐낼까. 공존은커녕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주의의 전형이다. 아이들이 배울까 두렵다.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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