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산케이’를 언론자유 기수로 만든 청와대 / 권태호

등록 2014-10-12 18:32수정 2014-10-12 21:03

권태호 정치부장
권태호 정치부장
지난 8월3일 일본 <산케이신문>이 보도한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 기사의 전문을 봤다.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이 쓴 칼럼 형식의 이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이른바 ‘7시간 행적’의 빌미가 된 7월7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회 운영위원회 답변(“(사고 당일 대통령의) 위치에 관해서는 전 모릅니다”) 상황을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김 실장의 문답으로 그대로 전달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7월18일치 <조선일보>의 최보식 칼럼(‘대통령을 둘러싼 소문’)의 내용 대부분을 하나하나 전달하면서 적당히 해석을 덧붙였다. “세간에는 ‘대통령이 그날 모처에서 비선과 함께 있었다’는 루머가 만들어졌다”, “때마침 풍문 속 인물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더욱 드라마틱해졌다” 등이 모두 조선일보 칼럼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다만 조선일보가 ‘증권가 정보지’를 언급하며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는” 정도로 스치고 지나친 ‘7시간’에 대해, 산케이는 “증권가 관계자에 의하면,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게 문제의 글 전부다. 시답잖다. 국회 상황, 조선일보, 증권가 찌라시 등 3개를 적당히 버무려 박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빈정대는 게 한국인으로서 기분이 유쾌할 리 없다. “대참사 당일 대통령 소재나 행동을 대답할 수 없다니 한국의 권력 중추는 이렇게도 불투명한 것인가”, “한국의 권력 핵심과 그 주변에서 무엇인가 불온한 움직임이 있는”, “박 정권의 레임덕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등의 문구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힘든 상황을 은근히 즐기는 듯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하지만 대부분 인용보도인데다 자기 주장을 쓴 칼럼 형식의 글에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게 기술적으론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청와대의 강경발언과 한국 검찰의 ‘오버’가 현지 신문을 베끼고 거기에 주석 몇 문장 붙여놓은 특파원을 졸지에 언론자유의 기수로 만들어줬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8월7일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으로 와 “엄하게 대처하겠다.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월 초 홍보수석에 임명된 뒤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나선 자리였다. 윤 수석이 산케이 보도 4일 뒤 갑자기 이렇게 흥분한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후 진행상황을 보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책임을 물은 것도 없다.

현재 이 사건은 자유수호청년단과 독도사랑회 등 시민단체가 가토 지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고, 검찰이 이를 고발 사건으로 다루면서 출국정지, 기소 등 강경대응하고 있다. ‘제3자’가 고발했고, 당사자인 청와대는 ‘제3자’가 되어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만 한다. 당사자 고발의 경우, 기사 내용이 허위임을 드러내기 위해 반론을 제기해야 하는 부담을 의식한 때문에 뒤로 빠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사건은 엉뚱하게 언론자유 논쟁에 한-일 관계 부담 등 청와대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번졌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는 게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산케이 보도가 이제 한국, 일본이 아니라 전세계로 다 퍼져나가 대통령의 명예를 더 실추시켰고, 국익도 훼손됐고, 향후 한국 검찰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전세계가 “예의주시”하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움직이지 못한다.

현대사회에서 참모에는 3가지 유형이 있는 듯하다. 공익(국익, 사회)을 먼저 생각하는 부류가 있을 것이고, 다음으로 모시는 주군에게 무엇이 진정 도움이 될지 생각하는 부류가 있을 것이고, 그리고 하지하(下之下)로 그냥 주군이 시키는 대로 하는 부류가 있을 것이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