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메이지유신의 여러 지사들 가운데 일본인들은 사카모토 료마를 특히 좋아한다. 료마는 에도막부에 반대하면서도 라이벌 관계에 있던 사쓰마번(규슈)과 조슈번(야마구치현)의 사조동맹을 성사시켜 막부정치를 붕괴시키고 메이지시대를 연 시대의 풍운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료마가 군산복합체의 지원을 받은 무기상인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865년 당시 료마가 나가사키에 만든 ‘가메야마상사’는 설립 후 3개월 만에 약 7500정의 총을 사조 양 세력한테 강매하였다. 신흥상사로는 드문 일이었고, 그 배후에는 토머스 블레이크 글러버라는 인물이 있었다. 글러버는 1861년에 글러버상회를 설립하였는데, 이 상사의 정식명칭은 ‘자딘매시선 나가사키 대표부’이다. 자딘매시선은 영국에 본부를 두고 홍콩에 설립된 동인도회사가 그 모체이며, 이후 홍콩에서 아편전쟁을 일으켜 부를 거머쥔 군산복합체였다.
료마는 글러버로부터 자금과 군수물품을 대여받았고, 사조동맹은 료마로부터 구입한 무기로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시대를 열었다. 일본의 메이지 개국의 배후에 군산복합체의 음모가 있었다는 흥미로운 해석이다. 하지만 료마의 군수산업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150년만에 다시 사조동맹 지역 출신인 아베 수상을 통해 부활하고 있으니 역사는 참 심오하다.
미·일 정부는 지난 8일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의 수정을 발표하면서, 종래의 미-일 방위협력의 범위를 일본 주변으로 한정한 지리적 및 기능적 개념을 삭제하고 ‘지역, 글로벌 평화와 안전’의 개념을 추가하였다. 이 중간 보고서는 지난 7월1일 아베 내각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에 대한 미·일 정부의 추가 조치로 보이지만, 그 본질은 일본의 군산업체가 미-일 방위협력 아래 향후 미국 및 다국적군의 글로벌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3년 5월 대기업 군산업체 60사로 구성된 경단련의 방위생산위원회(위원장 미쓰비시중공업회장)는 무기의 해외수출에 ‘국산품의 수출을 폭넓게 인정’하라며 무기 수출 3원칙의 개선안을 아베 내각에 제언하였다. 이 제언은 금지되고 있는 국산의 센서 및 반도체의 무기 수출을 인정할 것과 전문 부서를 설치해 국가가 전략적으로 무기 수출을 추진하고 대규모 공동개발도 주도해줄 것을 요구했다.
군산업계의 요구에 아베 내각은 지난 4월1일 무기 수출 3원칙을 폐기하고 ‘방위장비 이전 3원칙’으로 무기 수출의 법적 기반을 마련해줬다. 또한 같은 달 19일에는 새 방위산업 육성전략을 발표하여, 무기 개발과 취득, 수출을 총괄하는 2000명 규모의 방위장비청(가칭)을 신설하는 등 체계적인 무기 수출 지원 방안을 발표하였다. 군수산업한테 수출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아베 수상의 약속은 해외 방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지난 4월 아베 수상의 유럽 방문에는 11개 대기업 군산업체 대표가 동행해, 독일과는 전차 공동개발을, 프랑스와는 무인잠수기 공동개발 협정에 합의했다. 또한 일본 방위성은 6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무기전시회 ‘유로사토리’에 12개 군산업체를 전후 처음으로 참가시켜 ‘일본의 무기시장으로의 귀환’을 과시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일본의 군수산업이 당장 경쟁력을 가지면서 대규모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제조업의 장기불황과, 3·11 방사능 사태로 인한 원전수출 제한 등은 일본의 산업계가 무기수출을 통해 탈출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를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군사충돌의 직전까지 치닫고 있는 ‘잃어버린 한반도 10년’ 동안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무기상인 료마의 후계자들인 일본의 군산복합체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 등 ‘한반도의 피’를 먹고 괴물이 되어온 역사를 갖고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저지는 역사적 프레임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남북한 분단 문제 해결과 우리의 안전 보장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적극적인 평화주의 실천을 통해 동아시아 군국주의의 토양을 제거해 나가려는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평화 전략 속에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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