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세월호와 황우석, 수치심에 대하여 / 이제훈

등록 2014-10-15 18:35수정 2014-10-16 11:01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1. 시인 진은영은 연민을 멀리하고 수치심을 느끼라고 권고한다. “우리는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이들을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죽은 사람들이 단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죽어가는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이 엉망진창인 시스템을 방치한 우리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몸서리치는 것이다.” 연민은 왜 안 되는가? 시인은 수전 손택의 글로 대신 답한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타인의 고통>)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 특집(4·16, 세월호를 생각하다)에 실린 글에서다.

시인만 연민을 경계하는 게 아니다. 같은 특집 글에 소설가 황정은은 “좀처럼 분향소에 갈 수 없었다. 거길 다녀와서, 그래도 거길 다녀왔다는 안도감을 느낄까 두려웠다”고 적었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러니 절망이나 냉소도 경계 대상이다. “4월16일에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고 그날 이후 내내 거대한 괴물처럼 마디를 늘려가며 꾸역꾸역 이어지고 있는 참사”인 탓이다. 소설가 박민규의 글(‘눈먼 자들의 국가’)은 서늘하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당신들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2. <제보자>는 황우석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모티프로 한 극영화다. 영화 속 이장환 박사(이경영)-심민호 연구원(유연석)-윤민철 피디(박해일)는, 실존 인물인 황우석-‘제보자’ 류영준-한학수 <문화방송> 피디와 겹친다.

황우석의 ‘과학사기’ 사건은 과학과 윤리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법적 판단도 끝난 사안이다. 사기 혐의는 유죄이며 서울대 교수직 파면도 정당하다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었다. 하지만 황우석은 건재하다. 2010년 6월 황우석의 수암생명공학연구원 기공식은 국회의원, 전직 고위관료 등 3000여명이 성황을 이뤘다. 경찰청은 최근 “과거 연구윤리는 고려사항이 아니다”라며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경찰견 복제 사업자로 선정했다. 9월25일엔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황우석과 함께 경기도 이천에서 ‘우량 한우 암소 복원 및 보급에 따른 생산기반시설 연구보고회’를 치렀다. ‘황우석’을 떠받치는 힘과 세월호 사건의 진실규명을 가로막는 세력은 얼마나 다를까?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과 달리 제보자 심민호 연구원이 아닌 언론인 윤민철 피디다. 왜?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는 진실을 수호하는 분들에 대한 헌사”이자 “제보의 중요성보다는 언론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고 밝혔다. 그런데 황우석의 민낯을 까발린 피디수첩의 문화방송은 지금 전혀 다른 존재가 돼 있다. 임 감독이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이런 일화를 전했다. “<제보자>에 출연한 배우 중 한명이 어떤 매체의 젊은 기자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고 한다. <제보자>에 나오는 것처럼 일선 피디가 아이디어를 자체 선정·진행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더란다. 그 젊은 기자들은 아마도 성역 없는 보도라는 걸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불과 십여년 사이에 이렇게 된 거다.” 이쯤에서 나는 시인이 권고한 수치심과 함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선량하게만 살다 떠나지 말고, 좋은 세상을 남기고 떠나라!”(<도살장의 성 요한나>)라는 절규를 되새길 수밖에.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nomad@hani.co.kr

이호진 프란치스코 “세월호와 같은 희생자 없게 우리 손에서 끊어야” [한겨레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