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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한국 경제, 다시 갈림길에 / 이봉현

등록 2014-11-02 18:34

이봉현 미디어전략 부국장
이봉현 미디어전략 부국장
쉬는 날 나라 걱정할 만큼 애국자는 아니지만, 지난 주말은 한국 경제가 어디로 가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 예보와 달리 가을 공기가 상쾌했던 파주 축구훈련장. 현대중공업과 한겨레신문이 가을마다 여는 축구 동아리 친선대회가 벌써 17년째가 됐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이 전무일 때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서로 알아나 보자”고 제안해 시작된 행사다. “한두 번 하고 말겠지” 했는데 잊지 않고 이어져 이제 선수끼리는 우정을 느낄 정도가 됐다.

사실 올해는 현대중공업 경영사정이 좋지 않아 대회를 못할 줄 알았다. 지난주 현대중공업은 3분기에 1조9346억원의 적자(영업손실)를 냈다고 발표했다. 올해 들어 누적 적자액이 3조원을 넘어섰다.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올해는 건너뛰자”고 했지만 “그래도 빼먹지는 말자”는 답이 왔다. 공기는 어쩔 수 없이 무거웠다. 거의 빠지지 않던 권오갑 사장은 구조조정에 바쁜지 오지 못했고, 단골 멤버인 임원도 개막 사진만 찍고 울산으로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축구로 만난 현대중공업은 어려움과 거리가 먼 회사 같았다. 첫 시합이 열린 1998년에 7조원 선이던 매출은 25조원대로 늘었고, 2004년을 빼고는 해마다 수천억원에서 최대 3조6000억원(2010년)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세계 1위 조선업체에 걸맞은 실적이었다. 이런 회사가 조 단위의 적자를 내는 상황은 분명 새로운 것이다. 세계경제의 불황과 중국 조선사의 추격이 원인이다.

오후에는 인천에 공장이 있는 중소기업체 사장을 만났다. 삼성전자에 가전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인데, 금속가공 기술을 인정받아 연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탄탄한 회사라고 했다. 20여년 전 1200만원으로 창업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장은 상황 판단이 빨라 보였다. 그의 업종은 후발국이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소재, 디자인 분야였지만,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며 걱정이 많았다. “갈 때마다 느끼지만 중국은 정부가 키우겠다고 작정하면 돈을 무지막지하게 쏟아붓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뒤진 반도체를 따라잡겠다고 정부가 나서 20조원의 투자자금(국부펀드)을 조성하지 않았습니까?”

한국 경제가 위기인 것은 내수부진, 격차확대에 더해 그나마 선전하던 수출제조업의 경쟁력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순환적 불황이라면 다행이겠으나 중국의 추적과 엔화 약세라는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는 데 심각성이 있다. 중국은 막대한 자본과 내수를 기반으로 선발주자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이제 조선, 철강, 가전, 정유, 석유화학, 섬유 등에서 우리 턱밑까지 쫓아와 ‘차이나 리스크’를 안기고 있다. 엔 약세는 중국 견제란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도 닿아 있어 쉽게 역전될 것 같지 않다.

이제 우리 경제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한 지점에 왔다. 그런데 위기와 패러다임의 전환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초 “한국산 티브이가 미국 매장 뒤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은 중저가 위주의 모방 전략이 한계에 이른 것을 말했다. 돌파구로 나온 것이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드라이브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질 경영’이었다. 1997년의 금융위기와 구조조정 역시 수익성과 재무관리의 중요성을 비싸게 일러준 패러다임의 전환기였다.

이제 개방형 혁신, 기초 및 응용 연구 확대, 서비스업 육성, 내수 확대 등 많은 것을 탁자에 올려놓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열쇳말을 찾을 때다. 어쩌면 그 정도로는 어림없을 수도 있다. 교육, 노동, 정치, 문화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를 위한 사회적 타협이 필요할 수 있다. 국민들 사이에 유리와 불리가 엇갈리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나오는데, 기왕 하려면 이런 시대적 필요성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이봉현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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