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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김성근 감독과 자니 윤 / 이춘재

등록 2014-11-05 18:26

이춘재 스포츠부장
이춘재 스포츠부장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열성팬들이 만들었다는 ‘김성근 감독 청원’ 영상을 보다가 콧날이 시큰해졌다. 동영상에 나오는 한화 팬들은 “우리는 한화 이글스를 사랑합니다. 한화 이글스의 10대 감독으로 김성근 감독님을 원합니다”를 담담하게 말한다. 일부러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전해서인지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아름답고 진정성 있게 들린다. ‘롯데 팬이지만 한화 감독은 김성근 감독이어야 한다’는 억센 부산 사투리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한화 팬들은 ‘보살’이라 불린다. 만년 하위팀을 열성적으로 응원하려면 보살 못지않은 득도의 경지가 필요하다는, 일종의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이기는 것이 목적인 프로 스포츠에서 지는 경기가 더 많은 팀에 애정을 갖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화는 2007년 이후 포스트시즌은 문턱도 밟지 못했고 최근 3년 동안은 꼴찌를 도맡아 했다. 그런 팀을 응원하는 보살들이 ‘우리도 가을야구 좀 보고 싶다’며 한목소리로 원한 감독이 김성근 감독이다. 40~50대의 젊은 감독들도 많은데 70대인 김성근 감독을 집단 청원한 이유는 뭘까.

김성근 감독은 1996년 ‘만년 꼴찌’ 쌍방울을 맡아 그해 정규시즌 2위에 올려놓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2001년 초반 2할대 승률로 6위에 머물던 엘지 트윈스는 김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뒤 6할에 가까운 승률을 기록하며 2위로 뛰어올랐다. 이전 시즌 6위였던 에스케이는 김성근 감독 영입 뒤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았다. 이후 세차례나 더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두번의 우승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런 성적만으로는 ‘보살’들이 간절하게 그를 원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김성근 감독은 변화와 도전의 아이콘이다. 그는 프로 무대에서 좌절을 맛본 선수들을 조련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감독 시절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버리는 건 쉽다. 부족한 선수를 어떻게 고치느냐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의 야구철학이 녹아 있는 이 말에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열광했다. 그는 자신의 야구철학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구단과의 갈등도 피하지 않았다. 프로구단주들 사이에서 그가 기피인물로 꼽히는 이유다. 인생의 쓴맛을 경험했거나 기성세대에 막혀 꿈을 펼쳐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은 그에게서 도전의 가치를 배운다. 물리적 나이로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의 삶은 그 어느 세대보다 미래 지향적이다.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접하는 70대 권력자들의 이미지는 김성근 감독과 전혀 다르다. 미래보다는 과거에 무게중심을 두고 변화와 도전을 가로막는다. ‘루저’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패자부활전도 꺼린다.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패거리 문화’로 온갖 이권을 독점한다.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자니 윤 한국관광공사 감사는 자기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듯한 답변을 해 눈총을 샀다. 여당 의원조차 “전문성이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자니 윤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경선 캠프에서 재외국민본부장, 대선 캠프의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논란이 불거지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자니 윤은 한 야당 의원의 실언으로 촉발된 ‘노인 폄하’ 논란의 희생자가 되어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는 ‘내 신체나이는 60대’라며 나이를 걸고넘어지지 말라고 큰소리쳤다. 김성근 감독에게는 그 누구도 나이를 문제삼지 않는다. 나이가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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