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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블랙사회’ 만드는 아베노믹스 / 이영채

등록 2014-11-09 18:36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문제로 가을 정기국회가 어수선하다. 일본 정기국회도 노동자파견법 개정을 둘러싸고 파행을 겪고 있다. 아베노믹스에도 불구하고 경제회복의 조짐이 보이지 않자 아베 내각은 대규모 재정지출이라는 응급조치를 또다시 감행하였다. 일시적인 주가 상승 등 경제회복의 기대치가 높아졌지만, 근본적인 경제개혁이 실현되지 않는 한 소비세 인상 등 장기적인 불안 요인은 언제든지 일본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는 유동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결국 아베의 경제정책은 재벌에 대한 개혁보다 노동유연화를 가속화시키는 정책으로 그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월28일부터 일본 국회 앞에서는 노동자파견법 개악 저지를 위한 노동자 공동집회가 매일 열리고 있다. 렌고, 전노련, 전노협 등 대표적인 3개 노동단체가 주축이 된 고용공동행동은 파견법 개정안을 ‘평생파견법’ ‘정규직 제로 법안’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당파적 이해관계와 노동운동의 역사적 대립으로 인해 좀처럼 공동행동을 하지 않는 이들 노동단체들이 공동전선으로 대항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아베 내각이 추진하는 노동자파견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일본 노동진영의 위기의식은 심각하다.

일본의 파견근로법은 고도성장의 정체 국면이 드러난 1985년 나카소네 내각 때 처음 제정되었다. 하지만 당시는 종신고용, 연공서열제로 불리는 일본적 고용관행이 아직 남아 있었기에, 정규사원은 본래의 고유업무, 파견사원은 제한된 특정분야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로서 인식되었다. 파견기간은 1년, 그 범위도 13개 영역으로 한정하였다. 하지만 노동자 파견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베 총리가 관방장관을 하던 2003년 고이즈미 내각 때이다.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전면 표방한 고이즈미 내각은 예외로 금지하고 있던 제조업 및 의료업무에까지 파견근로를 인정하고, 26개 전문업종에 대해선 정규사원으로 채용하지 않은 채 무기한 파견고용을 할 수 있도록 개정하였다. 이때 제조업을 제외한 파견기간을 최저 1년에서 최고 3년으로 한정하였다.

이번에 제2차 아베 내각이 추진하는 개정안의 뼈대는 바로 자신이 고이즈미 정권 때 만든 현행법의 ‘3년 제한’을 철폐하고, 제조업을 포함한 ‘모든 업종’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파견법은 업무단위로 계산을 하고 있기에 ‘동일업무’에 3년 고용 규정을 적용하면, 중도해고 및 중도채용을 하더라도 동일업무직에서 3년째 일하는 파견노동자는 이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개정안은 ‘동일업무’에 3년이 경과하면 정규직 채용 없이 다른 파견노동자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 고용횟수의 제한도 두고 있지 않기에 개정안이 적용되면 기업은 특정 업무에 영원히 파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고용주는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 사원을 처음부터 채용하지 않을 것이며, 신규사원은 모두 파견노동자를 장기간 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파견법 개정안이 성립하면 더 이상 파견노동은 정규노동자가 수행할 수 없는 특정 업무를 보완하는 제도가 아니고, 정사원을 대체하는 제도로 변모할 것이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고용이 구조화되고 ‘정규직 제로, 평생파견’의 세상이 실현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개정법에 대해서 “육아를 담당하는 세대들이 삶의 보람을 갖고, 안심하면서 일하는 환경 정비가 목적”이라고 국회에서 답변하였다. 모든 파견회사를 허가제로 함으로써 불법파견을 없애고, 지도감독을 철저하게 해서 고용안정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재벌의 구조개혁에 따른 일자리 창출이 아니고 재벌의 요구를 받아들여 노동의 유연화 및 비정규직이 합법화되고 일상화된 불안정한 사회의 창출일 뿐이다. 결국 아베 총리가 표방한 ‘세계 제일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모든 노동자들이 파견근로로 일생을 사는 ‘블랙사회’가 궁극적인 종착점이 될 것이다.

아베 내각도 박근혜 정부도 ‘창조와 재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양국의 젊은 세대들이 파견노동으로 건강을 잃고 정신적으로 피폐되고 우울증에 걸려 미래의 전망을 갖지 못하는데 어떻게 창조와 재생이 가능하겠는가. 창조보다도 그들의 현재의 삶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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