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나는 오래전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수를 임명하는 진상규명위원회가 기소권·수사권을 갖는 안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왔다. 기소권·수사권을 가진다는 것은 진상규명위원회가 특검을 하급기관으로 둔다는 것인데 이는 특검의 취지에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특검을 임명하는 하나의 이유는 검찰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는 권력자로부터 독립적인 검찰을 만들겠다는 것이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누구라도 결과에 대해서 편향되었다는 지적을 할 수 없는 독립적인 기소, 수사를 실현하여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우선 임명이 된 후에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특검은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기소와 수사를 하는, 즉 판사 같은 검사를 만들자는 취지이다. 피해자든 피의자든 임명자든 특검에 대해 어떤 영향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특검의 취지이다.
그런데 특검을 세월호 유가족이 간접적으로 통제하도록 한다는 것은 특검의 존재 이유에 반하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영향력 아래 있는 특검의 결과물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몇몇 진보적 학자들이 피해자가 참여하는 특검이 문제없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는데 궤변이다. 진정한 특검은 피해자도 배제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특검은 피해자가 누구이고 가해자가 누구인지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누가 피해자인지를 밝혀내는 일에 ‘피해자’가 참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독일의 사소제도는 피해자가 검찰의 권력행사에 개입하는 제도가 아니라 피해자가 국가권력의 도움을 얻지 않고 가해자를 기소하는 제도다. 영미의 대배심제도 역시 바로 피해자들이나 피의자들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대배심원을 무작위 선발하는 것이라서 비교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나는 그래서 ‘기소권·수사권’은 협상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기소권·수사권을 포기하고 특검 임명을 유가족이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협상 목표가 되어버린 듯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얘기를 이렇게 쓰는 이유는 바로 ‘급진적’이라고 알려진 박래군 활동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던진 질문이 이랬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서 패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박래군의 답은 이랬다. “작은 승리들을 모아서 그런 승리들을 발판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하여 더 큰 승리를 얻는 것이다. 이번 특별법은 과거의 어떤 조사위원회도 가지지 못한 것들을 획득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패배라고 생각하니 원통하다.”
광우병 시위가 불현듯 생각났다. 사람들이 광장에서 데이트를 하고 동창회를 할 때, 30개월령 이상의 소는 수입하지 않기로 재협상을 했을 때, 한나라당이 가축전염예방법을 고치겠다고 할 때, 나는 “지금 승리를 선포하고 시위를 중단시켜 국민들에게 승리의 기억을 만들어주자. 그래야 다음에 다른 이슈가 터져도 국민들이 다시 편하게 광장으로 나올 것이다. 지금 다른 이슈까지 얹으면 국민들로부터 고립된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로 가자”, “민영화 반대도 포함해서 전선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거셌고 나는 소수가 되었다.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여러분들이 잘 알 것이다.
결국 광우병 시위처럼 롱테일 법칙(주목받지 못하는 다수가 핵심 소수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현상)을 잃어버려 실패했다고 생각한 세월호 국면에 대해 박래군은 증언하였다. 결국은 계획대로 된 것이다. 누군가의 뜻대로 된 것은 아닐지 몰라도 국민이 패배한 것이 아니다. 유족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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