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올해 들어 통일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던 한국에서 언제부턴가 다시 ‘북한 붕괴론’이 심상찮게 들려오고 있다. 미국 학자들도 거의 한목소리로 “이제 북한은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것 같다. 북한이 3년 안에 붕괴한다는 설도 자주 들려온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북한은 경제가 돌아가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본격적인 개혁개방도 점쳐진다. 그렇지만 한국 일각에서는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면서도 정작 북한의 이런 변화는 외면하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논리는 간단한 것 같다. 북한은 절대적 권력만 믿는 ‘사악한 종교집단’과 같기에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라져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북핵 문제, 북한 문제에서 국제 협력은 이제 하나만 남았다. 바로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위한 협력이다. 북한 붕괴론 주창자들은 북한 정권만 바뀌면 북핵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된다고 한다. 또 그 방법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희망은 중국이 북한에 대해 경제적으로 숨통을 조일 수 있는 강한 제재를 가하는 데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중국에 대한 기대가 초지일관한다고 해야 할까. 중국의 구실이란 그것밖에 없다고 믿는 것 같다.
북한 붕괴론은 1990년대 초반부터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그렇지만 아사자가 속출한 전대미문의 고난 속에서도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다. 외부 세계의 예측은 빗나갔다. 무엇이 북한을 지탱한 것일까? ‘수령 유일 지도체제’의 절대권력과 고도로 통제된 폐쇄적 공간이 북한을 지탱했다고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그때보다 상황이 훨씬 나아진 오늘, 다시 또 북한이 무너진다고 하는 것일까? 김정은 정권 들어서 절대권력이 흔들리고 있으며 폐쇄적 공간이 뚫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그보다 더 중요한 근거는 바로 중국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의 버팀목 구실을 하던 중국을 ‘한국 편’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일각에서는 중국이 한국 편인 지금이 통일을 서두를 절호의 기회라는 말도 돈다. 박근혜 정부의 대중 우호전략도 이러한 결과를 바란 면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통일헌장을 추진한다며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남한의 통일 준비는 통일을 밀어붙인다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 북한이 붕괴된다면 한반도 문제는 다 풀리는 것일까? 100년 전 한반도는 이미 ‘동아시아의 발칸반도’라는 말을 들었다.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만큼 한반도 역시 동아시아의 화약고라는 비유다. 북한 붕괴가 이 화약고에 불을 댕기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근대사 이후 한반도가 진원지였던 청-일 전쟁, 러-일 전쟁, 중-일 전쟁, 한국전쟁에서 중국은 막대한 피해를 봤다. 그런 중국이 과연 한국 일각의 기대에 ‘결정적 힘’을 보태게 될 것인가?
오늘도 시리아, 리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우크라이나와 같은 나라들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 거기에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괴물이 나타나 끔찍한 일을 자행하고 있다. 모두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많은 전쟁들은 이른바 ‘정권 교체’를 위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늘 들려오는 전쟁 소식은 정부군과 반정부군과의 싸움인 것이다.
북한 붕괴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한반도는 위와 같은 참상이 벌어질 가능성에서 비켜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북한 붕괴 시 일어날 수도 있는 내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을 북한 정권을 계속 존속시키자는 주장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많은 것 같다. 그들은 그저 북한을 규탄하고 전쟁 불사를 외쳐야만 의로운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북한 붕괴론은 과연 미래의 여러 가능성을 다 책임질 수 있는 주장일까. 북한 붕괴론이 최소한 위험한 발상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북한은 근대사 이후 지정학적 열세를 우세로 전환시켜 강대국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던” 데서 이젠 “새우 싸움에 고래가 뒤집힌다”고 하는 논리다. 그런 북한은 정상일까? 북한 붕괴론이나 새우 싸움론이나 서로를 오판한다면 비극은 도둑처럼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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