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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수사기관의 ‘변호인 참여규칙’ 고쳐야 / 최명호

등록 2014-11-17 18:33

최명호 변호사
최명호 변호사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를 소환해 신문할 때 변호인이 참여하는 게 법률로 허락된 것이 2007년부터다. 초동수사 단계에서 변호인이 피의자의 옆에 앉아 같이 조사를 받으며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여 사건 해결의 정확한 방법을 찾는 게 변호인 참여의 가장 큰 장점이다.

변호인이 사건 조사 현장에 임할 때마다 검찰청에서는 대검찰청의 ‘변호인의 피의자신문참여 운영지침’을, 경찰서에서는 ‘피의자신문시 변호인 참여규칙’이라는 내부 규칙을 적용한다. 이 규정들에는 공통의 독소 조항들이 있다. 수시로 피의자와 변호인이 상의를 할 수 없도록 하고, 변호인이 피의자를 대신해 답변하거나 특정한 답변 또는 진술 번복을 유도하지 못하게 하며, 수사기밀누설·신문방해라는 추상적인 기준으로 변호인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점이다.

최근 대법원은 변호인 참여권과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을 내놓았다. 간첩사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를 권유했다가 국가정보원에 의해 퇴실당한 장경욱 변호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사건은 2006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 변호사는 ‘일심회’ 간첩 사건의 피의자 변호를 맡아 국정원에서 이뤄진 피의자 신문에 입회했다. 혐의 사실과 관련 없는 내용의 신문에 장 변호사가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조언하자 ‘진술거부 권유가 수사 방해에 해당한다’(수사관), ‘적법한 변호 활동이다’(장 변호사)라는 식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조사실에서 쫓겨난 장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장 변호사가 수사를 방해했다는 근거라며 국정원이 제시한 대검 운영지침에 대해, ‘이는 행정규칙에 불과해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율하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필자도 2008년 6월 인천지방검찰청의 피의자 조사 과정에 입회했다가 강제 퇴실당한 경험이 있다. 조사 과정 녹취를 요청했으나 수사관은 거부했고 “알아서 녹음하라”는 그의 말에 휴대용 녹음기를 꺼내자 수사관은 내게 갑자기 피의자의 등을 보고 3m 정도 떨어져 앉으라고 했다.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니, 그러면 이 방에서 나가란다. 명백한 변호인 참여권 침해였다. 검찰청을 나와 그날 바로 인천지방법원에 준항고를 제기했다. 인천지법은 “수사관이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피의자의 옆에 앉아 있는 변호인에게 피의자로부터 떨어진 곳으로 옮겨 앉을 것을 요구하고, 변호인이 이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퇴실을 명한 것은 정당한 이유 없이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을 침해한 처분”이라고 밝혔고 대법원에서도 확정됐다. 이 결정은 변호인 참여권 실무의 기준이 되고 있고 사법연수원 및 전국의 로스쿨에서도 중요 판례로 소개되고 있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변호인 입회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사건을 끌어오며 승소한 장경욱 변호사에게 경의를 표한다. 형사소송법에 변호인 참여권이 명문으로 규정돼 있지도 않았던 시기에 변호인으로서 주어진 책무를 다한 점은 더욱 인정받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검찰은 또 다른 간첩 사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를 권유한 장 변호사를 수사방해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대한변협에 징계 신청을 했다. 정당한 변론활동과 수사방해를 혼동하는 듯 보인다.

수사기관에 불려가는 시민이 가지는 권리는 묵비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2가지이다. 경찰·검찰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변호인 참여 규칙 등은 피의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기회 자체를 ‘사법경찰관’의 판단에 따라 자의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부디 수사기관은 위헌·위법투성이인 변호인 참여 규칙을 고치기 바란다.

최명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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