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편집인
“아직도 신문 보는 사람 있어요?” 요즘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이대로 가다간 신문이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2017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신문이 사라지고, 한국은 2026년, 2040년이면 전세계의 종이신문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그런 상황까지 오진 않겠지만 종이신문이 조만간 고사 위기에 처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독자가 신문을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원인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일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정보와 뉴스를 자유롭게 볼 수 있는데 누가 굳이 쪼그리고 앉아 신문을 뒤적이고 있겠는가. 믿을 수 있는 공론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진영 논리에 빠진 지면도 독자로 하여금 신문을 외면하게 한다.
지난달 둘러본 독일 신문의 상황에 비춰보면 한국 신문 위기의 진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일 신문은 기본적으로 독자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신문 판매로 얻는 수입이 전체의 58%에 이른다.(2013년 기준) 한국 신문은 전체의 20~30%에 불과하다. 신문 1부(보통 28~36면)의 가격도 독일은 0.8~3유로(1000~4000원), 보통 1500원 정도다. <한겨레> 1부(보통 32면) 값은 800원이다.
독일 신문들이 이처럼 판매 부문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은 탄탄한 독자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일관성 있는 편집 방침을 유지함으로써 이에 공감하는 독자층의 신뢰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과의 연대를 위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교류의 공간을 만들어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감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충성스런 독자층은 경영의 안정적인 기반이 된다. 단지 신문 구독자로서의 기여만 하는 게 아니라 신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신문사의 쇼핑몰, 부동산 중개업 등의 고객으로 신문사 수익에 보탬을 준다.
이런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신문의 품질이다. 여유 있는 인력으로 자기 독자층이 만족하는 수준 높은 기사를 생산한다. 반원전과 사형 반대 등을 표방하는 <타게스차이퉁>은 250명이 6만부를 발행하고, 베를린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큰 <타게스슈피겔>은 400여명이 12만부를 찍어낸다. 굳이 많은 부수로 승부하려 하지 않고 편집 방향에 따른 차별화된 기사로 독자층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한국 신문은 어떤가. 신문을 지탱해온 건 독자가 아닌 기업 광고비였고, 독자는 광고비를 받아내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주류를 자처하는 일부 신문들이 무가지를 무더기로 찍어내고 부풀려진 부수를 근거로 대기업들을 압박해 막대한 광고비를 사실상 ‘강탈’ 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 신문이 유독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디지털화와 함께 이처럼 독자와 사회와의 관계보다 기업 광고비에 의존한 탓이 크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결국 종이신문의 살길은 독자와의 관계를 얼마나 탄탄하게 하고, 기사의 품질을 어떻게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
신문의 품질을 아무리 높인다 해도 ‘모바일 열풍’의 대세를 꺾지는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종이신문들이 이런 추세를 고려해 디지털 부문 강화에 역점을 둔 혁신 작업을 추진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그렇다고 종이신문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신문이야말로 건전한 사회적 공론을 형성하는 마당이고, 풍부한 공적 자료가 축적된 지식 창고이며,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보루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종이신문이 디지털 역량 강화에 머물러선 희망이 없다. 사회와 소통하는 다양한 방식의 네트워크를 대폭 확대하고, 디지털 역량 강화를 넘어 지면을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돼야 한다. 독자와의 소통을 통해 신문의 콘텐츠를 함께 만들고 상호 공유하는 동반자가 되는 것만이 종이신문에 등 돌리는 독자들을 되돌리게 하는 길이다. 그 결과 “그래도 신문은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기대한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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