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이화여대 교수·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필자는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대외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한-중 자유무역협정은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과 외교적 실리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한-중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을 통해 드러난 치명적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이란, 원래 두 개의 협상을 거쳐야 하는 게임(two level game)이다. 상대국과의 대외협상을 펼치기 전에 자국 내 이해관계 산업 사이의 이해조정을 위한 대내협상을 먼저 거쳐야 한다. 상대국으로부터 특정 부문의 관세철폐 양보를 얻어내려면 우리도 다른 쪽을 양보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 가운데 자유무역협정으로 이익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 사이의 대차대조표를 완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내협상이라고 의견수렴 과정만 거치면 되는 게 아니다. 관련 산업 종사자들을 설득하고 압박해 실질적인 양보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이런 대내협상 과정을 온전히 거치지 않고, 대외협상 테이블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지금의 사태가 벌어졌다.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가 중국 쪽에 줄 게 없으니 중국 쪽으로부터도 얻어낼 게 없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가 농수산물 민감품목 리스트를 고집하면서, 중국 쪽에 제조업 품목에 대한 관세 철폐를 요구하니 합의가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그러자 상품 시장 접근 분야는 추후협상 과제로 미루고 규범 분야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과가 필요해지자, 민감 품목들을 협정 적용 대상에서 서로 제외하는 것으로 손쉽게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고는 농수산물 분야를 방어해낸 것이 최대 성과인 것으로 발표했다. 이것은 협상이 아니고, 협상 모습을 연출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업 분야와 농수산업 분야 사이의 이해관계 조정의 의지와 능력이 결여된 것이 우리 대내협상 메커니즘의 실체이다. 청와대가 부처간의 이견을 표출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놓고 있는 상황이니 더욱 그렇다. 정치적 효과를 최우선시해 통상정책의 타이밍을 잡는 현 정권의 행태도 문제다. 대외정책이 국내 정치의 수단으로 손쉽게 전락할 때, 장기적 비용은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인사 추문과 세월호 정국을 ‘통일대박론’과 ‘일본 때리기’ 대외정책으로 버텨온 박근혜 정부가, 이제 통상정책마저 그 제물로 삼고 있다.
통상정책 전문가의 권위가 올바로 서지 못한 점도 이번 사태에 한몫을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무수한 논쟁을 겪으며, 통상협상 전문가들은 ‘국익의 첨병’이 아니라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외세의 앞잡이’라는 악평에 시달렸다. 정권교체와 더불어 통상교섭 권한은 갑자기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옮겨졌고, 그동안 통상협상에서 뛰었던 관리들은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어 국내 정치가 안내하는 길로 통상정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이제 한-중 자유무역협정을 넘어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그리고 대통령이 적극 지지의사를 표명한 아태자유무역협정(FTAAP) 등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구하는 광역경제통합 협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대내협상 체제로 광역 자유무역협정 협상으로 나가는 것은 탄약 없는 총을 들고 전쟁에 나서겠다는 이야기다. 이번 기회에 통상정책의 기능적 독립성을 다시 세우고 대내협상 메커니즘을 철저히 재정비해야 한다. 집권세력이 못한다면, 차라리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나서 정권을 일깨워줘야 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 과정을 다소 지연시켜서라도.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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