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현 미디어전략 부국장
폐주 연산에 이어 왕이 된 중종은 전혀 다른 두 얼굴을 갖고 있었다. 재위 39년간 그는 겸허하고 부지런했다. 세자 때 열심이다가도 막상 왕이 되면 경연(왕이 신하와 경전을 놓고 토론하는 것)을 귀찮아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평생 배움에 게으르지 않았다. 왕족들의 사치는 여전했지만 왕 자신은 옷을 기워 입을 만큼 검소했다. 무엇보다 신하의 말을 잘 들었는데, 실록에 표현된 대로 그 신중함이 지나쳐 “우유부단”에 가까웠다. “참으로 마땅한 말이로다”, “경들이 아뢴 대로 하세요”, “대신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겠소” 같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림의 기린아 조광조는 이런 왕을 통해 ‘도학정치’(道學政治)라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코자 했다. 그는 덕과 예로 다스려져 근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고자 개혁을 밀어붙인 경세가였다. 중종은 조광조를 3사의 말직에서 2년도 안 돼 홍문관의 수장 부제학으로 초고속 승진을 시킬 만큼 아끼고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중종은 몇 번 냉혹한 얼굴을 드러냈다. 이때는 “유순하나 결단성이 부족”(실록)한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반정공신의 수훈을 깎으라는 청을 들어줘 조광조에게 가장 큰 정치적 승리를 안겨준 지 불과 나흘 만에 왕은 훈구대신들을 야밤에 궁으로 불러들여 조광조 일파를 체포케 하고 결국 사사한다. 기묘사화와 함께 사림의 개혁도 물거품이 된다.
한껏 들어올렸다 갑자기 손을 놔버리는 당황스런 표변은 그 뒤에도 김안로 같은 권신에게 반복됐다. 이런 야누스적 행태에 어른거리는 것은 권력의 간지(奸智)였다. 변덕이 심한 이복형 연산 아래에서 몸을 낮춰 살아남는 처세는 그대로 성격이 됐고, 형이 권좌에서 끌려 내려오는 걸 본지라 왕의 자리와 왕가를 유지하는 것이 지상명제가 됐다. 도학정치도 부국강병도 부차적인 얘기였다. 권력의 간지를 좇아 신하를 밀어줬다 내쳤다를 반복하다 보니 뚜렷이 이룬 일이 없다. 삼포왜란을 비롯해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았고 백성은 곤궁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불리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 지난주 대통령의 리더십 부족을 비판했다.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경제공약을 만드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 그는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대통령이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지난 2년간 보여준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보다 앞서 박근혜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과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고백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대통령 만들기의 공신 3명이 집권 2년 만에 등을 돌린 것이다. 이들을 후하게 ‘경세가’라 불러준다면 권력자를 선택해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는 욕망이 강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국면에서 박근혜 후보의 유연함은 놀라웠다. 자신에게 쓴소리를 할 것 같은 김종인 같은 사람도 요직에 앉혔다. 살아온 이력으로 보아 수용하기 어려울 것 같은 정책도 받아들였다. 경제민주화, 복지, 그리고 올해 지방선거에서 소득주도 성장 전략과 같은 야당의 전략무기가 징발돼 박 후보의 공약이 됐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박 대통령은 들고 있던 손을 그대로 놓아버렸다. 사람은 쓰지 않았고 경제민주화, 복지, 소득주도 성장의 수많은 약속들은 냉정한 침묵의 강으로 던져졌다.
권력 핵심인 청와대에서 보고 자랐고, 아버지 사거 뒤 권력 부나방들이 보인 배신에 치를 떨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력은 어떻게든 움켜쥐어야 하는 지상의 명제인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권력이 필요한지의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 그 뻗어 오르는 권력의지가 단지 권력 그 자체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면 기다리는 사람들의 5년이 너무 허망하지 않을까?
이봉현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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