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에서 노인이 된 덕수는 자신의 점포인 ‘꽃분이네 가게’를 절대 안 팔려 한다. 가족들의 성화도, 시청 공무원의 행정 압박도, 그리고 주변 상인들로부터 ‘알박기’라는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이젠 장사도 안되는 수입잡화점인 ‘꽃분이네 가게’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못 판다”며 역정을 낸다. 10살이던 1·4 후퇴 때 피난지 첫 밤을 보낸 곳이고, 가족을 먹여 살린 덕수의 분신과도 같은 곳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곳이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덕수 삶의 목적은 ‘꽃분이네 가게’가 아니라 ‘가족’이었고, ‘꽃분이네 가게’는 ‘가족’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가 아니어도 우린 종종 수단과 목적의 전도 현상을 보게 된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2일 시무식에서 ‘충’을 말했다. “나아가서는 국민과 나라”라 했지만, 이때 충이란 “대통령님께 걱정 끼친 일들”에 대한 반성이란 걸 굳이 숨기지 않았다. 주군에 대한 ‘충’ 그 자체가 목적인 건 조선시대에 끝났다. 군사정부는 충성 대상을 ‘국가’로 대체했다. 하지만 국가란 ‘개인’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만든 기구다. 이 ‘기구’를 우상화해 충성을 맹세케 하는 건 전체주의 국가의 일반 유형이다. 굳이 충성을 맹세하려면 그 자리는 ‘국가’가 아니라 차라리 ‘이웃’(사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비서실 훈화 말씀을 비서들에게 얘기했으면 됐지, 뭣하러 대변인을 통해 ‘국민’에게까지 알렸을까? 국민도 대통령께 충성하라는 건지, 우리 이리 고생하는 걸 알아달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국제시장>에 60대 이상 노년층이 성원을 보낸다. 지난 삶에 대한 회한이기도 하겠지만, 내 ‘희생’을 알아달라는 자기연민이 담겨 있는 듯하다.
결은 다르지만, 지난 연말 헌법재판소로부터 해산 결정을 당한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도 이 정서가 느껴진다. 1997년, 80년대 대학에서 노동현장으로 갔다가 그대로 현장에 머문 이들을 기획취재한 적이 있다. 여전히 ‘철의 노동자’로 살고 있을 그들을 그렸는데, 막상 가보니 ‘그냥 노동자’가 많았다. 프레스에 손가락 하나 잘린 81학번은 노조 활동만 캐묻는 맹한 기자를 불편해하며 “그냥 일하고 월급 받고 살아요”라고 했다. 현장 투사와 결혼한 옛 여학우는 애 맡기고 큰맘 먹고 찾은 동창 모임에서 함께했던 ‘동지들’로부터 끼어들기 힘든 주식, 청약, 연봉 얘기만 듣고서 집으로 향하는 성수동 비탈길을 울며 오르며 “다신 가지 않으리” 골백번도 더 혼잣말을 했다는, 공지영 후일담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2006년 무렵, 야당을 출입할 때 통합진보당 전신 민주노동당 의원의 자동차가 아반떼였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쏘나타를 타던 의원이 이재오·차명진 등 단 3명이었고, 대부분 에쿠스를 탈 때였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매달 세비 800만~900만원 중 300만원만 가져가고, 나머지 500만~600만원은 특별당비로 내놓았다.
그 시절 운동했던 사람들, 그리고 통합진보당 인사들, 많은 희생을 한 사람들이다. 정의로운 목적에 나의 희생이 겹쳐지면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통합진보당은 아르오(RO) 모임, 부정경선 사태에 왜 그 매서운 결기로 단호히 처리하지 못했나? 만일 그때 제대로 처리했다면 헌법재판소는 아마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못 내렸을 것이다. 내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이 강하면, 다른 모든 게 정당해지고, 사소해질 수 있다. ‘신념의 정치’는 그래서 위험하다.
덕수는 영화 말미에 가게를 팔 것을 허락한다. 지난달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이 올바른 결정이라는 게 60.7%였다. 그런데 청와대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69.9%였다. ‘꽃분이네 가게’는 이제 팔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팔 기회를 놓쳤고, 청와대는 기회가 남아 있다. ‘충’을 말한 인사가 꽃분이네 가게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권태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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