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이 되는 해로 새로운 한-일 관계의 진전이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일본 내각조사부가 발표한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지난해 12월20일)에서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한 여론이 66.4%에 이르렀다. 전년보다 8.4%포인트나 증가한 것이고, 조사가 시작된 1978년 이래 최악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전인 2010년 조사에서 일본인의 한국 친밀도가 68%로 전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5년 만에 결과가 정반대로 뒤집어진 셈이다.
전후 한-일 관계는 몇 번의 전환기가 있었다. 먼저 1945년 8월15일 이후 35년 동안의 식민지체제가 끝났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반공체제 구축을 위해 한·일 양국의 상호협력이 ‘강요’되었고, 15년이 지난 1965년에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됐다.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가속화된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속에서 한·일 양국은 역사 문제를 애매하게 처리한 채 경제협력체제를 구축하였다.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있었음에도 일본은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만을 추진함으로써 이른바 ‘65년 체제’를 탄생시켰다.
한-일 관계가 극적으로 전환된 것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정권의 ‘21세기 파트너십 선언’ 이후다. 1997년 경제위기로 일본의 투자가 절실한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역사 문제보다 문화 및 경제 교류를 우선시하였다. 그 결과 일본에서 한류, 한국에서 일류의 붐이 일어났고 한·일 양국 사이에선 약 15년간 연간 300만 이상의 활발한 시민 교류가 이뤄졌다. 이른바 ‘98년 한류체제’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약 15년간의 문화 교류의 결과, 일본 내에서 한국 문화 및 한국인를 배격하고 추방하려는 ‘헤이트스피치’로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다.
한-일 관계는 1965년의 경제협력체제와 1998년의 문화협력체제를 통해서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협력의 토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또한 애매하게 처리해왔던 한-일 간의 역사인식 문제는 향후 한-일 관계의 안정적인 지속을 위해서 더는 피해갈 수 없는 중요 과제인 것도 명백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하고 절박한 과제라고 하더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을 한-일 관계 개선의 ‘입구’로 한정하는 것은 현명한 외교전략이 아니다. 북한의 경우,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결 없이 북-일 관계 개선은 없다’는 논리로 지난 15년간 대북압박 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일본 아시아외교의 고립 및 리더십 상실로 이어졌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한-일 관계의 최대 시급한 과제로 설정한다면, 지난 2년간의 대일외교를 재점검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원칙적으로 중요한 인권 문제임에도 그 규모가 방대하고 양국의 복잡한 국내외 사정이 얽혀 있다는 점에서 대일외교의 ‘입구론’이 아닌 ‘과정론’을 통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정부가 제3의 위원회를 공동으로 설치하고 전문가들이 역사 검증을 포함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까지 담은 정책 제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전술적인 전환도 하나의 유용한 방안이 될 것이다.
한-일 간의 긴밀한 협력은 이 지역의 불안정한 국제 질서를 안정화하고 지역 내의 복잡한 현안을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현재 아베 정권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주는 경제지표들은 거의 없다. 결국 집단적 자위권과 헌법 개정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1년 이내에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나 자민당 내의 리버럴 세력과 역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한계적인 만큼,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일본의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아베 총리의 인기가 지속되는 동안에 한-일 간의 역사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5년은 현실은 열악하지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놓쳐선 안 되는 골든타임이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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