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의 개성 발언(24일),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29일)에 이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신년사(1일),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1일) 등 일련의 과정을 보면 금방이라도 남북대화가 재개될 형세다. 그러나 남북간 발언의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화 재개가 그리 녹록지 않은 것 같다. 또한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남북관계 복원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꽤나 높다.
지난 정부 시절 남북간의 접점에서 북쪽 인사들과 수많은 접촉을 하며 그들의 속내를 적잖이 경험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화의 장이 마련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살펴보고 싶다.
먼저, 우리가 제안한 통일준비위(통준위)-통일전선부 구도의 대화는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본다. 북한은 이미 통준위를 ‘흡수통일을 위한 기구’라고 낙인을 찍은 상황이다. 통일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나가는 장관급회담을 제의했어야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통일부는 이미 21차례의 남북장관급회담 경험이 있고, 통일부가 결정하고 집행해야 할 이슈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통준위 명의 대화를 제안해놓고 이제 공은 북으로 넘어갔다고 그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국장급(과장급) 실무접촉을 제의해 회담 형식이나 의제, 장소, 일정 등을 협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어차피 이루어질 회담이라면 북을 고민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만약 장관급회담이라면 북의 통전부장을 회담 상대로 고집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과거에도 북에서 내각참사가 수석대표로 나와 격 문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실질이 중요하다는 대승적 견지에서 문제삼지 않은 경험이 있다. 또한 실제적으로 남북간 합의의 최종결정은 최고위급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격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회담이 성사된다면 핵심적 의제는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금강산관광, 5·24 조치, 이산가족 상봉 등 문제에서 소로를 대통로로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김양건 비서의 구체적 언급은 이 문제들의 해결이 남북관계 복원의 선결조건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정부는 천안함 사건이 북의 소행이라고 결론을 지었고, 북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고 함께 조사해 보자며 전면 부인했다. 그래서 정부는 5·24 조치로 개성공단 외의 경제교류를 단절했다. 시간은 이제 북한으로 하여금 남쪽에 대화의 손짓을 먼저 해야 할 상황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요구사항인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는 북이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한 사안에 대해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선 ‘덮을 것은 덮는’ 우리 쪽의 결단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또한 김 비서의 발언 내용에는 5·24 조치, 금강산관광 문제가 원만히 해결된다면 이산가족 문제도 일회성 만남이 아닌 생사확인, 서신교환, 상시면회 등 본질적 해결의 대통로가 마련될 수도 있다는 암시가 있다고 본다. 광복 70주년 기념 공동행사 등 우리 쪽 제안들도 쉽게 수용될 것이다.
정치적 명분은 우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더 큰 국익을 생각하자. 인도적 문제 해결은 물론 남북간 교류협력 확대가 가져올 국익, 나아가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적극적 안보를 생각하면서 회담을 준비하자. 싸운 뒤에도 잠깐이면 어린아이들은 화해를 하고 같이 즐겁게 논다. 아이들의 순수함, 정직함, 단순함 때문이다. 아이들과 같은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통일의 집은 절대 지어질 수 없다는 것이 남북교류 현장에서 배운 진리다.
이성원 한라대 북한경제연구원 부원장
이성원 한라대 북한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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