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6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 다목적홀에 120여명의 연극인들이 모여 장장 6시간이 넘는 토론회를 했다. 특정 협회나 기관이 주최한 것이 아니다. 연극인 개개인의 자발적 발의로 만들어져 자발적으로 홍보됐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논제가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유사한 포럼이 그 얼마 전에도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였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장이 그동안 없었던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문화예술위원회 산하 한국공연예술센터의 2015년도 정기대관공모 선정결과 발표였다. 올해로 36회를 맞는 서울연극제가 사상 처음으로 대관 선정에서 탈락한 것이다. 서울연극협회를 중심으로 강력한 항의가 이어졌고 한국공연예술센터를 형사고소하기도 했다. 두 단체의 오랜 갈등 끝에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서울연극제 일부를 개최한다고 합의하며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연극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갈등의 시작부터 봉합까지의 모든 과정이 연극계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느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공연예술센터의 공공성이다. 한국공연예술센터는 대관 선정 결과를 공표하면서 심의위원 명단과 심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서울연극협회의 항의가 시작되자 문화예술위원회 권영빈 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심의 과정은 엄정하고 공정하였다”고 못박았을 뿐이다. 그런데 공정성이란 기관장의 선언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잘 만들어진 평가지표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예술의 평가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주관이 개입되어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주관이 없는 것이 문제다. 바로 그 때문에 심의위원과 심의 내용의 공개는 필수적이다. 그것이 공개되어 심의위원의 구성부터 심의 기준과 내용 그리고 결과까지를 누구나 논쟁하고 검증할 수 있을 때, 또 심의위원이 제 이름을 걸고 결과에 책임을 질 때 공정성은 비로소 시작된다.
그런데 한국공연예술센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과정을 봉쇄했다. 그러면서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심의위원에게 넘겼다. ‘표적 심의’니 ‘외압’이니 ‘개인적 원한’이니 하는 불필요한 의혹들이 생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연극계의 정당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채 예의 그 ‘엄정하고 공정한’이라는 표현만을 반복하며 시간을 끌던 한국공연예술센터는 돌연 서울연극제에 아르코예술극장을 다시 대관한다며 서울연극협회와 합의를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또다시 투명하지 않았다.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선정 결과의 번복 과정에서 심의위원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권영빈 위원장이 강조하던 그 ‘엄정하고 공정한 심의’는 철회된 것인가. 혹은 처음부터 심의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인가. 이제 모든 대관 결정은 기관과 협회 간의 힘겨루기 승패로 결정되는가. 지난 두 달여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공연예술센터의 행보는 퍽 일관되게 자신의 공공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의 공정성과 신뢰는 말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의사 결정이 투명하고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검증과 토론이 가능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어떤 정책적 결정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중앙부처의 단독이나 부서 담당자의 임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토론과 합의의 결과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연극제 대관 유무는 그런 면에서 연극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과정이다. 토론회에 참가한 연극인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진아 연극평론가·숙명여대 교수
이진아 연극평론가·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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