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새해 들어 담뱃세 인상으로 흡연하는 서민들이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다. 담뱃세가 2000원 오름에 따라 서민들에게 주는 부담도 큰 일이지만 ‘가격정책을 통한 흡연율 감소’라는 정부의 면피용 주장에도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작태에 대해 많은 국민이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보건복지부 관료들은 ‘담뱃값 물가연동제’까지 고려 중이라고 하고 “담배 다음에는 술값을 올리겠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으니 민심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듯하다. 정부는 담뱃세와 주세를 올려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주겠다고 하지만, 국민 다수는 실제 의도가 서민증세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국민의 심리적 저항감이 높아지고 있는 까닭이다.
정부는 올해 국민으로부터 거두는 국세의 규모를 221조500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에 견줘 5조1000억원이 늘어난 액수다. 그중에서 기업이 부담할 법인세는 1000억원 증가한 데 그쳤으니, 개인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민과 봉급생활자들이 추가로 부담하는 액수가 5조원에 이르는 셈이다. 세금이란 부자가 더 많이 내는 것이 상식이거늘 이명박 정부가 시작한 부자감세 기조를 박근혜 정부도 계속하고 있으니 상식과 이성이 비틀린 조세체계가 자리잡은 것이다.
문제는 올해 서민증세가 담뱃세 인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은 자치단체의 재정기반 확충이란 명분으로 대표적인 민생세금인 주민세, 자동차세 등의 인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2년에 걸쳐 주민세를 두 배 이상 올리고 영업용 승용차와 화물차, 승합차 등의 자동차세를 2017년까지 100%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지방세법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발의했고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여기에 더해 ‘13월의 보너스’라고 불리는 연말정산이 곧 이루어지면 봉급생활자의 분노와 저항은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제방식이 기존의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고 각종 공제가 대거 사라지게 되어 환급액이 적어지고 일부는 환수액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소득공제 종류와 공제 효과에 따라 증세 편차가 크게 발생하면서 많은 근로소득자들이 큰 좌절감을 느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가계소득 증대와 소비지출을 통한 내수활성화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서민과 봉급생활자들의 환급보너스까지 휩쓸어가는 극도의 정책모순에 빠진 셈이다. 정부는 법인세를 인상해 기업 과세를 강화하고 가계의 세부담을 경감하여 조세와 가계소득 간의 선순환 구조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자원외교에서 발생한 천문학적 국고손실과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청와대 공직자들이 벌이는 정치후진국의 행태들이다.
세금은 우리가 문명을 누리는 대가다. 그러므로 납세자인 국민은 고도로 문명화된 정치문화, 사회복지, 교육환경, 안보를 누릴 권리가 있다. 국민은 자신이 동의하고 납득할 수 있는 세금에 대해서는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조세협치’인 것이다. 조세협치가 사라진 곳에서는 국가의 ‘세금 갑질’이 횡행할 뿐이다. 미국의 대법원장을 지낸 존 마셜은 “국가의 과세권이 국민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The power to tax is the power to destroy)고 경고한 바 있다. 혹시 국가는 국민에게 문명의 혜택을 제공하기보다는 과세를 통해 납세자를 파멸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렴주구하는 국가의 과세권에 대해 국민의 저항이 시작되면, 권력의 정당성이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정책 당국자들이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성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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