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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증오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등록 2015-02-03 18:49수정 2018-05-11 15:19

울었다.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이슬람국가(IS)가 일본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를 죽이는 영상을 본 뒤 그 어머니의 기자회견 장면을 본다. 슬픔을 꾹꾹 누르며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 아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원했다. 아들의 죽음이 불러온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들의 신념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

마음이 뜨거워졌다. 금방이라도 온몸이 활활 타는 듯한 비통에 잠겼을 텐데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이 모든 사태의 본질이 증오라는 것을 분명히 깨우쳐주고 있다. 또한 그것이 사슬이 되어 돌고 돌아 자신들에게 향하게 된다는 깨달음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내 문제가 아니고 이 땅의 전쟁이 아니고 우리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해왔던 일들이 바로 내 문제이고 우리의 문제이고 인류 전체의 문제라는 절절함으로 다가왔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인생을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일생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선택되어진 운명이라 할 수 있다. 2015년의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이슬람국가와 무관할 수 없고 전쟁과 약육강식의 운명과 자본에 휘둘리는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소용돌이와 시대의 운명에 내몰리지 않고 오롯이 소박하게 자신의 꿈이나 이루면서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속한 집단과 국가가 처한 운명에 따라 이미 선택지가 주어졌고 자신이 택한 길처럼 보여도 사실상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에 서 있는 것이다.

고토 겐지의 어머니의 모습 뒤로 이슬람국가에 가입할 뜻을 비치고 터키 국경으로 가서 실종되어 생사조차 모르는 열여덟살 김군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떠난 고토 겐지와 달리 대한민국의 청소년이 어떤 신념이 있어서, 어떤 증오가 마음을 사로잡아서 터키로 떠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 어머니도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어린 자식들을 찾아 터키 국경을 헤매는 세계 각국의 또 다른 수많은 부모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이슬람국가로 향한 그들에게 개별적으로 증오의 화살이 향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갖자고 다짐한다. 어떤 집단의 이기주의나 욕심 과대한 자기과시가 종교라는 포장을 입혀 만들어낸 사태를 개별적인 단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증오의 사슬을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는 일본인 어머니의 눈물 어린 염원에도 증오의 사슬은 끊어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준 전쟁반대 평화 염원의 메시지를 들었어도 일본의 아베 총리는 자위대가 무장을 하면 인질구출작전이라도 펼 수 있었을 것처럼 과시하고 있다. 무기가 가장 강력한 수출품목이 되고 전쟁이 가장 큰 산업이 되어 군산복합체라는 괴물이 사욕을 채우는 한 전쟁 없는 세상이 올 수는 없다. 증오의 사슬은 바로 무기가 산업이 되고 전쟁을 해야만 하는 그런 세력에게 향해야 한다고 본다.

누군가가 나를 째려보면 나도 째려볼 수밖에 없고 누군가가 발을 걸면 나도 함정을 만들어야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집단적으로 표출되고 증오로 전쟁으로 살육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개별 인간들이 선택한 길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피해는 그런 것과 무관한 보통의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미래공상과학영화처럼 인류가 한번 완전히 망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절망적인 생각이 든다. 인류가 진화하고 진화해서 만들어낸 모든 문명이 고작 이런 것이라면 그런 인류는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멈출 수 없는 증오의 수레바퀴에 인류가 전부 올라타 있는 것 같다. 지구 최후의 정적과 폐허 속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인류가 태어나야만 이 전쟁의 증오의 사슬이 멈추어지는 것 아닐까. 공멸을 택하느냐 평화를 택하느냐를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끔찍할 뿐이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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