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연구센터 연구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보수·진보를 구분하지 않고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소득불평등에 대한 원인과 분석이다. 1950년대 이래로 선진 산업국가에서 생산성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상위 10%를 제외한 서민과 중산층 소득은 정체되어 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전 계층에 골고루 나누어지지 않고 상위 10%에 쏠리고 있다는 게 최근 세계 경제의 근본적 고민이다. 낙수효과(trick-down) 경제로 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모든 계층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지난 50년 이상의 경제지표들은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경제 전체는 지속적으로 번영의 길에 있지만, 서민과 중산층 90%를 끌어안는 ‘포용적 번영’(inclusive prosperity)의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2012년 미국의 상위 10%의 소득은 전체의 48.16%에 이른다. 이들이 45% 이상의 소득을 점한 시기는 1920년대 대공황과 지금이다. 한국의 상위 10% 소득도 197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늘어 지금은 주요 산업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44.87%에 이른다.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전체 소득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중산층 보호와 육성이란 것은 로마 시대 이래로 국가운영의 근본 명제다. 지난 60년 동안 세계 주요 산업국가들에서는 민주주의를 구가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중산층 소득은 정체되었고 소득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세계화와 기술혁신으로 중위 수준의 기술과 노동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중산층은 몰락하고 있고 그에 따라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다.
지난 1월15일 미국진보센터(CAP)와 영국의 공공정책조사연구소(IPPR)가 함께 구성한 ‘포용적 번영 위원회’에서 ‘중산층 살리기와 민주주의 구하기’에 관한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하버드대 총장 출신인 로런스 서머스 교수와 영국 노동당 그림자 내각의 재무장관인 에드 볼스가 공동위원장을 맡아 5개국 17명의 전문가가 ‘포용적 번영’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미국, 영국, 스웨덴, 일본, 프랑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7개국에서 1950년대부터 2013년까지 국내총생산 성장률과 하위 90%의 소득을 분석하고 있다. 결론은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에도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했다는 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계층간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우울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위원회는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정책 패러다임을 도출하고 구체적으로 부록에서 미국과 영국의 정책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서 중산층 살리기의 정책 대안으로 지난 10년간 제안되고 있는 ‘사람이 먼저다’(to put people first)의 내용들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낮거나 중간 수준의 일자리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기에 ‘사람에 투자하여’ 높은 수준의 일자리를 갖는 중산층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중간 기술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저임금과 실업 상태에 방치되는 것을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람과 교육에 투자를 해서 고급 일자리를 향유하는 중산층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저임금 향상과 완전고용, 누구나 학비 걱정 없이 대학을 갈 수 있는 교육 기회, 혁신적인 산업정책과 지역 클러스터 지원, 주주의 단기적 이익을 넘어서는 기업의 장기적 안목, 그리고 국제 공조를 구체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국가운영 아이디어였던 신자유주의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2008년 위기는 극명히 보여주었다. 지금은 주요 산업국가들에서 ‘포용적 번영’의 국가전략이 제안되고 있다. 우리도 ‘사람 냄새가 나는 따뜻한 포용적 번영’의 길이 새 국가전략으로 채택되길 기대한다.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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