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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누구를 위해 세금을 깎았나

등록 2005-09-29 18:02수정 2005-09-29 18:08

정남구 논설위원
정남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얼마 전 조지 부시 대통령을 향해 이런 비난을 퍼부었다. “나 같은 부자에게 네 번씩이나 세금을 깎아준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세금 깎아줘서 나쁘다니, 클린턴은 역시 민주당원임이 분명하다. 클린턴의 말에 우리나라 정당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내가 보고 들은 바로는, 어느 정당이나 국회의원도 나라 살림살이를 이끌어갈 큰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여기저기 세금을 깎아줘 생색을 내는 데 훨씬 익숙해져 있다. “그까이꺼 대충”이다.

내년 정부 예산안대로라면 우리나라 국민은 한 사람당 356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4인 가족 한 가구당 1424만원이다. 물론 내가 이런 수치에 흥분할 이유는 없다. 도시 근로자 가구의 평균과 소득이 비슷한 나는 지난해 이런저런 소득공제를 받아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집이 없어 재산세를 내지도 않았고, 고물차 한 대에 낸 자동차세와 주민세를 낸 것이 직접세의 거의 전부다. 물론 부가가치세는 제법 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1500만원을 소비지출에 썼다면 세금이 120만원쯤 될 것이다. 담뱃세, 주세, 수입관세 등이 일부 전가된 것까지 다 합쳐 많게 잡아도 우리 가족은 한 사람당 전체평균의 7분의 1인 50만원 정도밖에 세금을 안 냈다. 아니, 못 냈다.

빠듯한 나라살림을 생각하면 이건 조금 미안한 일이다. 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9조원의 빚을 내기로 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앞으로도 해마다 7조~8조원씩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외환위기를 수습하느라 투입한 공적자금에 대한 이자 부담과 사회복지비 수요가 늘어 쓸 곳은 많은데, 세금은 쉽게 늘리기 어려워서다. 그런데도 국회는 지난해 세제를 개편해 세금을 깎기로 했다. 소득세율은 1%포인트씩, 법인세율은 2%포인트씩 내렸다. 혜택은 누가 봤을까?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 가운데 소득세를 한 푼이라도 내는 사람은 절반에 불과하다. 세율을 낮추면 그 혜택은 고스란히 고소득층에게 돌아간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소득세율 인하로 세금은 한 해 6천억원 가량 덜 걷히게 된다. 이로 인해 소득 계층별로 후생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면 잘사는 40%는 후생이 4조3136억원 늘어나는 데 반해, 못사는 60%는 4조3346억원 줄어든다.

법인세율 인하도 다를 것이 없다. 최근 2~3년 경기는 나빠도 대기업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해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2년 전보다 갑절 가량 늘었다. 분배구조가 이렇게 바뀌었으면 늘어난 법인세로 재정을 충당하는 게 옳다. 하지만 국회는 기업들이 어렵다며 법인세율을 낮춰줬다. 세수는 한 해 7천억원 가량 줄어드는데, 그 혜택의 대부분은 소수 대기업에 집중될 판이다. 세금 깎아준 이들이 누구 편인지는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세금을 거둬야 한다. 가뜩이나 양극화가 심화하는 시대에 재분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길은 조세정책밖에 없다. 특히 소득이나 부가 클수록 세율이 높은 소득세나 재산세를 늘려가야 한다. 가난한 이들은 세금 감면을 반겨선 안 된다. 뒤늦게 세수가 부족하다고 소주에 세금을 올리겠다지 않던가. 몇 푼 안 되는 세금 감면에 기뻐하다가는 이렇게 뒤통수를 맞는다. 결코 소주에서 그칠 리 없다. 소득세·법인세율은 당장 도로 올려야 한다. 나는 기꺼이 ‘몇 푼’ 더 낼 준비가 돼 있다.

정남구/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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