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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유럽이 자초한 ‘유럽의 위기’ / 존 페퍼

등록 2015-02-22 18:53

유럽이 요즘 몹시 좋지 않은 상태다.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지에서는 최근 협상가들의 정전 노력에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 새 정부는 유럽연합의 긴축 조처에 맞서 유로존 탈퇴를 위협하고 있다. 파리와 코펜하겐의 테러 공격은 중동 전쟁의 역풍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성장률 정체와 반이민 정서의 증가 속에서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이런 불만을 이용하고 있다. 유럽 통합에 대한 반대를 뜻하는 유럽 회의주의가 이렇게 인기를 끈 적이 없다.

안전하고 번성하며 평온한 유럽의 이미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언뜻 보기엔 유럽을 공격하는 문제들이 외부의 불행과 오판, 악행의 결과처럼 보인다. 현 경제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돼 번진 것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1년 전 키예프의 대중 시위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현 위기는 단순히 유럽 국가들의 통제를 넘어선 관계없는 사건들 때문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유럽은 냉전 종식 이후 경제와 안보 이슈에서 두 가지 결정을 했다. 이제 그 결정의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

경제 부문에서, 유럽연합은 보다 공평한 경제라는 초기의 약속에서 벗어나 지난 20여년간 신자유주의적 접근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더 작은 정부와 적은 금융 규제, 긴축을 의미했다. 유럽의 경제 정체는 상당 부분 유로존의 지출 확대에 대한 독일의 거부의 결과다. 그리스의 반란은 부채 문제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컨센서스의 직접적 거부다. 프랑스의 민족전선, 덴마크의 인민당, 영국의 독립당 같은 극단주의적 정당들에 의해 부추겨지는 유럽 회의주의 기류는 부분적으로 실업과 정부 서비스 축소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좌파는 이 분노를 이용하고 있다. 좌파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지지하는 곳에서 극우파는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호소력을 넓히고 있다.

안보 이슈도 암울하다. 1990년대 초반, 파리에서 우랄산맥까지 ‘유럽 공동의 집’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냉전은 마침내 끝났다. 러시아·미국, 그리고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는 이 공동의 집의 기반이 될 수 있었다.

대신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영향력 확대를 밀어붙였다. 유럽안보협력회의는 자격을 갖춘 조직이었으나 역량은 제한적이었다. 소련의 해체 및 유고슬라비아의 분리 속에서, 나토는 이런 무질서에 대한 유일한 대안임을 내세웠다. 또 유럽을 넘어서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전쟁에 개입하게 될 새로운 임무를 준비했다.

나토가 기존의 구조와 회원국을 유지했었다면, 새로운 유럽의 안보 구조는 여전히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 미 행정부 시절 미국은 나토의 동진을 밀어붙였다. 나토의 회원국 증가는 군수업체들에는 큰 이익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충분치 않았고, 나토는 옛소련의 영역으로까지 동진을 계속했다. 2004년엔 발틱 3국을 회원국으로 가입시켰다. 우크라이나·조지아(그루지야)·몰도바는 미래 회원국이 되기 위한 줄에 섰다.

바로 이때 러시아가 거부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2008년 남오세티아·압하스 자치주 방어 명목으로 조지아와 전쟁을 시작했으나 실제로는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마찬가지로 나토군이 러시아의 문 앞에 진군하는 것에 대한 러시아의 두려움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9·11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유럽의 참여는 유럽내 이슬람 이민자들과의 긴장을 악화시켰다. 더욱이 유럽에서 공격을 감행한 테러리스트들은 아프가니스탄·리비아 등지의 나토군 작전 참여를 테러의 이유로 거론했다.

유럽연합은 한때 자신들을 미국식 자유방임 경제의 대안으로 내세우고,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공동의 집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다른 길을 받아들였다.

유럽이 이런 선택들을 진공 속에서 한 것은 아니다. 경제 세계화의 힘은 무역과 금융자본 흐름의 장벽을 낮추도록 압박했다. 미국은 유럽 안보의 방향에 거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그러나 유럽의 정치·경제적 통합에 대한 현재의 도전은 부분적으로 유럽 대륙을 보다 포용적이고 번영하게 만들 경제·안보적 대안을 거부한 유럽 자신의 결정의 결과다. 유럽은 자신이 뿌린 씨앗을 거둬들이고 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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