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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의약품 특허에 걸린 큰 판돈 / 딘 베이커

등록 2015-03-15 18:53

지난해 가을 인도의 새 총리가 된 나렌드라 모디는 미국 워싱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 만남 뒤 오바마 행정부는 “인도가 특허 보호 강화를 암시하며 특허 관련 법률을 재검토하는 작업 부서를 만드는 데 동의했다”며 이를 열심히 홍보했다.

인도는 세계 복제약(제네릭) 산업 선도 국가다. 인도 복제약은 인도에서 10억명 넘는 인구에 공급될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개발도상국 사람들에도 고품질이면서 싼 가격으로 공급된다. 인도 복제약 산업이 성공한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인도의 특허 관련 정책 때문이다. 인도는 복제약 산업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1970년대에 약품 관련 특허권을 없앴다. 인도는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때문에 2005년에 다시 특허권을 보호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유럽보다는 특허권에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인도는 새로운 화합물이 포함된 약에 대해서만 특허권을 인정한다. 인도 법원은 이미 알려진 화합물을 혼합해 만든 복합약에 대해서는 특허 독점을 보장할 만큼 충분히 혁신적이지 않다고 판결했다.

이는 인도 복제약 생산업자들이 부유한 나라들에서 팔리는 약값의 극히 일부 가격만 받고도 복제약을 팔 수 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특허권 보호를 받고 있는 많은 약들이 인도에서는 보호되지 않는다. 시(C)형 간염 치료에 효과적인 약인 소발디를 미국에서 3개월 동안 처방받으려면 8만4000달러가 든다. 인도 복제약은 1000달러 이하면 된다.

미국 제약사들은 이런 상황을 상당히 우려한다. 미국 약값이 인도 약값보다 100배 이상 비싼 세상에서는 이들 제약사가 독점적 시장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인도에 산업친화적인 특허 규칙을 적용하라고 몰아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가 특허 규칙을 강화하라고 압력을 넣는 나라가 인도만은 아니다. 특허권 보호 강화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주요 의제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초안에서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의 주요 내용은 특허를 더 오래 그리고 강하게 보호할 수 있게 만드는 ‘데이터 독점’ 규칙이다.

데이터 독점은 복제약 회사들이 유명 제약회사들이 선전해온 약의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실험 결과에 의존하는 것을 금지한다. 비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복제약 회사가 이미 존재하는 약을 복제하면서 자체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 상황은 비윤리적일 수 있다. 이미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가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도, 실험 대상 환자들 중 한 그룹에는 위약(플라세보)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더욱 강력한 특허 독점을 세계에 적용하는 데 성공한다면, 문제는 약값 상승만이 아니다. 약품 개발은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구조에 갇히게 될 것이다.

특허로 보호된 가격과 생산 단가 사이의 거대한 차이는 약품 공급과 판매에서 실제로 낭비를 일으킨다. 미국에서 제약회사들은 수만명의 판매중개인을 고용하고 있는데, 의약품이 생산단가의 수십배 가격에 팔리고 있어 판매 행위 자체가 매우 큰 고수익을 낳기 때문이다.

특허 체계에 비밀 보장이 포함되기 때문에 연구 과정에서도 엄청난 낭비가 생긴다. 과학 진보에 최상의 길이 될 수 있는 ‘연구 결과 공유’ 대신 제약회사들이 자사의 연구 성과를 강력히 통제하며 특허를 획득하는 데 필요할 경우에만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이는 불필요한 중복 연구로 이어진다.

특허 체계는 제약회사들이 자사 약들의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도록 조장하는 면도 있다. 제약회사들은 자사 약의 안전성과 품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발견들을 경시하거나 은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머크는 관절염 약인 바이옥스가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증거를 숨기다가 소송에 걸려 거의 50억달러를 배상했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중세 시대에 기원을 둔 (특허) 체계를 따르는 것이 21세기 의약품 연구 재원 마련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무역 상대국들에 더욱 강력한 특허 보호를 강요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미래에도 이 체계 속에 빠져 옴짝달싹 못할 수 있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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