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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는 삼성 라이온즈 팬이다

등록 2005-10-02 17:27수정 2005-10-03 10:47

권태호 경제부 기자
권태호 경제부 기자
아침햇발
대구가 고향인 나는 어린 시절,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었다. 이만수·장효조는 우상이었고, 돈많은 ‘삼성’이 더없이 미더웠다. 비록 한국 시리즈에선 자해공갈단 수준의 ‘생쑈’로 가을마다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였지만, 그래도 삼성이 좋았다. 우리편이었으니까. 그런데 서울 쪽으로 진학하면서 혼동스러웠다. 친구들은 모두 ‘삼성 라이온즈’를 싫어했다. ‘왜 삼성을 싫어하느냐’고 묻자, 머뭇거리다 “잘난 척 하는 게 싫다”고 했다.

이름도 낯선 금산법(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 삼성을 들볶는다. 인터넷 글을 봐도 삼성에 대한 정서는 심하다 싶을 정도다. 종업원 수 20만명, 수출 22%, 국내총생산(GDP) 17%, 세수 8%, 사회봉사 연간 3217억원(2002년). 삼성의 우리 사회 기여도다. 그런데도 삼성이 싫다니! 금산법은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 주식을 5% 이상 갖지 말라는 거다. 그런데 삼성생명은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삼성전자 지분(7.25%)을 취득했고, 삼성카드는 제재조항이 없던 1998년 에버랜드 지분을 추가로 인수했다.(25.6%) ‘초과지분 매각론’과 ‘소급적용 위헌론’이 부딪친다.

소급 논쟁이 아니라, 삼성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임은 서로 잘 안다. 95년 이재용씨는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8천만원을 받았다. 16억원은 증여세로 냈다. 남은 돈으로 에버랜드 주식을 샀다. 비상장사인 에버랜드 주식 가치는 8만5천~23만원이라 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주당 7700원에 팔았다. 62.5%를. 이어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주식을 사들여 그때까지 그룹 지주사인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되어, 지주회사 자리를 승계했다. 후계구도가 깔끔히(?) 정리됐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다들 애써 눈감았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남은 건 삼성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아무래도 좋으니 돈 많이 벌어 우리 나라 잘살게 해주시오’라는 정서가 엷게 깔려 있었다. 그런데 지난 6월 삼성이 ‘법대로 하자’며,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내면서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직감했다. 독재권력이 거꾸러진 자리에 절대권력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엑스파일. 사람들은 ‘삼성의 힘’을 확인했다. 협박에 가까운 대국민 사과문.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이 회장이 직접 쓴 〈이건희 에세이〉를 읽으며 그가 역사·경제·예술·스포츠, 심지어 동물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박학다식하고, 나라와 사회에 대해 강한 책임과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절로 느꼈다. 계몽군주다. 아쉽게도 지배구조와 관련된 언급은 끝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의 뇌리에 심어놓은 게 나라와 정부의 동일시다. 지금 삼성은 기업과 총수의 동일시를 세뇌하고 있다. 기업이 잘돼야 총수도 잘되겠지만, 역은 때론 성립하지 않는다.

에버랜드가 이재용씨에게 주식을 싸게 판 것이, 삼성생명이 주당 70만원이라는 주식을 9천원에 에버랜드에 판 것이, 이씨가 7700원에 산 에버랜드 주식을 삼성카드가 10만원에 산 것이, 에버랜드에, 삼성생명에, 삼성카드에 어떤 도움이 됐나? 우린 더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를 즐겼을지도, 더 많은 보험금을 탔을지도, 더 적은 현금서비스 이자를 물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삼성은 외국계 펀드의 기업 인수·합병을 말한다. 다 안다. 외국인에 대한 경영권 방어가 목적인지, 총수일가의 지배권 강화가 목적인지. 기업이 기업 아닌, 총수의 이해에 충실하면 외면받는다. 기업 이미지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이 가을 나는 또 ‘삼성’을 응원한다. 내가 응원하는 삼성이 더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권태호/경제부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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