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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박 대통령의 1970년대 강박증 / 박민희

등록 2015-03-25 18:59

1970년대 ‘좋았던 그 시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박증’이 최근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중동 4개국 순방에서 돌아온 박 대통령은 ‘제2의 중동붐은 하늘의 메시지’라는 신념 전파에 열중하고 있다. “제2의 중동붐이 제2의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중동 갔다’고 (말할 수 있도록)” 등의 발언을 계속하면서, 1970년대 중동붐 되살리기가 우리 경제의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시대에 박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하자 “너나 가라 중동” “박 대통령 지지하는 분들은 자식과 손자를 중동으로 보내 각하를 기쁘게 하라” 등의 분노와 냉소가 들불처럼 번졌다. 그 아래엔 박 대통령의 인식이 1970년대에 고착돼 현재 국제정세나 한국 사회의 현실과 계속 엇나가는 시대착오성에 대한 절망감이 있다.

1970년대 세계적 기준으로 저임금 노동력에 속한 한국 노동자들이 고유가로 호황을 맞은 중동 건설현장 곳곳에 진출한 것은 시대 흐름에 맞았지만, 현재 중동 건설현장에는 소수의 한국인 관리·기술 인력만 필요할 뿐 노동자의 대부분은 월 400달러 정도를 받는 남아시아 노동자들이다. 일부 중동 부국들이 지나친 석유 의존 탈피를 위해 금융, 정보기술(IT) 분야의 발전모델을 모색하고 있지만 여기에 한국 인력이 진출할 여지는 적다. 이런 국가들은 급증한 자국 청년들의 일자리 만들기도 버거워하는 상황이다. 국제유가 하락과 이슬람국가(IS)와 시리아 내전 여파도 주요 변수다. 이런 상황에서 ‘제2의 중동붐’ 구호를 반복하는 것은 해외순방 성과를 과대포장하거나, 보수 지지층의 박정희 전 대통령 향수를 자극하려는 꼼수이거나, 박 대통령의 시대착오성만 드러낼 뿐이다.

돌아보면 1970년대는 2차대전 이후 공고하던 냉전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던 역사적 전환기였다. 미-중 수교가 동서 냉전에 균열을 냈고, 미국의 동아시아 방어선이 후퇴하고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 마련됐다. 1971년 미국이 달러-금 태환을 중단하면서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하고 세계는 약달러와 고유가 시대로 접어들었다. 위기를 느낀 박정희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해 한반도 평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기도 했다.

이제 세계는 또다른 급변기를 맞았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아시아 회귀’ 견제 전략이 충돌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대거 동참하면서 미국의 세계 금융 패권엔 크게 금이 갔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돌려받기를 사실상 포기했고, 남북관계는 수렁에 던져놓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 핵심이익이 걸린 문제를 두고 갈팡질팡해왔다.

박민희 국제부장
박민희 국제부장
29일 박 대통령은 또다시 1970년대의 추억을 강조하며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1979년 방한한 리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통역을 했던 인연 등이 계기가 됐다. 이번 장례식에서 박 대통령은 리 전 총리의 유산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권한다. 리 전 총리는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면서도 중국 개혁개방에 힘을 보탰고 중국과의 관계를 절묘하게 발전시켜 왔다. 특히 중국과 싱가포르가 1994년부터 공동 운영하고 있는 중국 쑤저우공업원구의 성공 사례는 개성공단의 중요한 모델이다. 박 대통령의 싱가포르행이 개성공단 갈등을 풀고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는 여정이길 바란다. 남북관계 개선은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전략적 핵심 카드다.

박민희 국제부장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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