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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 눈] 법률의 생명력 / 고영재

등록 2015-03-26 18:32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비리 의혹 고위공직자 후보…미국 가서 평일에 골프친 홍준표
‘김영란법’ 저촉 개연성…‘한겨레’는 법정신 실현에 앞장서기를
이른바 ‘김영란법’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국회를 거쳐 국무회의를 이미 통과했다. 앞길엔 1년 6개월 동안의 유예기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내년 가을이면 ‘세계에 유례없는 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김영란법’의 본이름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공직자가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을 경우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품에 대한 규정은 광범위하다. 금전이나 유가증권, 부동산은 물론 숙박권, 초대권, 관람권, 골프 접대 등 유형·무형의 경제적 이익을 망라한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다. 음습한 접대 문화, 부정 청탁 관행도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폰서 검사’나 ‘벤츠 여검사’, ‘삼성 장학생’이 사라지고, 공직사회의 청렴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법안을 통과시킨 여야나 시민단체 모두들 환영의 뜻을 밝힌다.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벗는 계기가 돼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가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마련됐다.”

김영란법이 청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획기적인 법이라는 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법이란 ‘주체적인 생명력을 지닌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릇 법률은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 법률은 주도적인 실행력도, 판단력도 지니지 못했다. 법률은 법의 실행·집행자, 수용·소비자에 의해 비로소 생명력을 부여받을 따름이다. 법치주의 문화 후진국에선 두말할 나위가 없다.

때맞춰 터져 나온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부패 척결’ 합창이 국민 눈길을 모을 법하다. 이완구 총리는 지난 12일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이 총리는 담화에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 “국정 운영의 큰 걸림돌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잔존하고 있는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흐트러진 국가 기강이다.”

닷새 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총리와 입을 맞춘 듯 말했다. “비단 국방 분야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켜켜이 쌓여온 고질적인 부정부패에 대해서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대통령은 이어 이완구 총리의 ‘부패 청산’에 대해 “흔들리지 말고 국민과 나라 경제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일하라”고 격려했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총리의 결연한 어투에서 긴장감과 함께 ‘어색한 부조화’를 느꼈을 법하다. 달포 전 총리 후보자 청문회의 개운치 않은 여운 탓이다. 청문회장에서 드러난 의혹덩어리 이 총리의 민낯은 아직 생생하다. 대통령은 줄곧 비리 의혹을 지닌 후보자들을 고위공직자 후보자로 지명해 왔다. 그 후보자들은 ‘금품’을 주고받은 비리를 저지르진 않았다. 그러나 그 ‘의혹의 비리’들이 어찌 금품수수에 비해 가벼운 일인가. 대통령과 총리의, ‘김영란법’과 부정부패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홍준표 경남지사의 행태도 김영란법의 불길한 운명을 예고하는 조짐으로 읽힌다. 그의 ‘미국 골프’는 몇 가지 부적절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공휴일이 아닌 날, 미국까지 가서 골프를 쳐야 했는지, 아직 명쾌한 해명이 없다. 부인이 어떻게 합류한 것인지, 또 다른 골프 동반자는 어떤 인물인지, 그 비용은 투명하게 지불된 것인지, 회동의 성격이나 목적은 무엇인지, 의문투성이다.

‘김영란법’ 저촉 개연성이 높은 사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당사자인 홍 지사는 ‘관행’에 평안을 느낀 듯하다. 언론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한겨레>도 25일치 신문에서 다소 맥 빠진 기사를 내보냈다. “홍 지사의 공식 일정 밖의 일은 알 수 없다”는 경남도 관계자의 무책임한 핑계를 전할 따름이었다. 홍 지사와 언론의 ‘불감증’은 이 법이 뿌리내리기까지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고하는 듯하다.

언론인은 ‘김영란법’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사립학교 교원과 함께 민간인으로서 법 적용 대상자로 포함된 터다. 과잉입법과 위헌 논란의 빌미가 된 대목이다. ‘비판 언론 재갈 물리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들린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거들었다. 정 의장은 한 토론회에서 언론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기관)이 아닌 언론까지 다 포함하게 되면 우리 사회는 분명히 경찰국가, 검찰국가가 될 것이다.” 국회의장의 말을 언론계는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언론은 김영란법과 미묘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한겨레>도 다소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다. 3월4일치 사설 “부패 없는 사회를 향한 이정표 ‘김영란법’”은 그 대표적 사례다. 사설은, 언론을 적용 대상으로 포함한 법의 당위성을 인정했다. “김영란법은 비리의 사슬을 끊자는 포괄적 부패방지법이다. 법의 적용 대상이 공직자를 넘어 언론사 임직원과 사립학교 교원으로까지 넓어진 것도, 공직 외에 언론과 학교 역시 ‘맑은 물’이 아니라는 국민의 시각이 반영된 때문일 것이다. 부당함을 따지기에 앞서 왜 이런 입법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설은 곧 ‘언론 탄압’ 등 자의적 법집행 우려를 제기했다. “수사기관은 언제라도 공직자·정치인·언론인 등에 대한 표적사정에 나설 수 있다.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나쁜 의도’를 막을 방안이 함께 담보돼야 하는데도 김영란법에는 그런 고려가 전혀 없다. 애초 언론이 공직과 나란히 이 법의 규율대상이 되는 것이 온당한지부터 의문이다.” 사설의 걱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영혼 없는’ 검경의 행태를 헤아릴 때.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그러나 <한겨레>는 모름지기 김영란법의 ‘법정신’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정도라고 믿는다. 불의와 편법,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켜보자는 법정신에. ‘공직자’라는 자구에 얽매여 언론인을 김영란법 대상으로 삼는 게 합당한지 따지는 일은 부질없다. 언론은 건강한 사회, 정의가 넘치는 사회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책무를 지닌 터다. 더구나 이 땅은 비리와 범법에 무감각한 염치없는 세상이다. 이번 법은 나라의 근본 바탕, 문화를 바꾸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법정신의 실현, 곧 법의 생명력을 북돋울 <한겨레>의 활약이 기대된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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