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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DMZ 평화걷기’라는 멋진 생각에 대해 / 존 페퍼

등록 2015-04-19 19:03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8년 6월 500마리의 소를 끌고 비무장지대(DMZ)를 넘었다. 노쇠해진 그는 당시 지팡이에 의지한 채 다리를 절며 국경을 넘었다. 그는 반세기 동안 정부의 호위 없이 비무장지대를 건넌 첫번째 민간인이었다.

굶주린 나라에 식용 재료를 보낸 이 상징적 이벤트는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정치 지도자와 기업 대표, 시민사회 단체들이 이를 환영했다. 이는 남북한 화해의 강력한 상징이 되었고, 그해 10월 그는 501마리의 소떼를 몰고 다시 비무장지대를 건넜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소떼가 특정 집단의 식용에 쓰일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것은 상징적인 것이었다.

17년 뒤, 일단의 여성들이 비무장지대를 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소를 몰고 가지 않는다.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노벨 평화상 수상자 메어리드 매과이어·리마 보위, 그리고 다른 20여명의 여성은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행사 기획자인 크리스틴 안은 “우리는 한반도에 대화와 상호이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용서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상상하는 데 모든 당사자들을 초대하고자 걷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인위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이 재결합하는 것을 돕고자 걷는다. 우리는 전세계적인 평화와 안보에 영향을 끼치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줄이고자 걷는다.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군비에 투입되는 자원들을 복지 증진과 환경 보호로 돌리도록 촉구하고자 걷는다.”

정 명예회장과 이 여성들의 메시지는 꽤 비슷할지라도 이 상징적 행위에 대한 반응은 꽤 다르다. 미국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 그리고레 스커를러토이우 사무총장은 최근 <시엔엔> 방송에 이 여성들의 일부는 친북한 관점을 갖고 있다고 불평했다. 수미 테리 컬럼비아대 교수도 크리스틴 안은 북한에 동정적인 글들을 썼다고 지적했다. <시엔엔>은 이어 북한 정권이 여성들에게 억압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관찰자도 자신의 뉴스레터에서 이를 “김정은 정권을 위한 가장 순진하고, 사기성이 있으며, 솔직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행사”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1998년 이후 현저하게 악화된 것 같지는 않다. 이전처럼 지금도 여전히 나쁜 상황이다. 오히려, 여성들의 지위는 이들이 1990년대 이후 생겨난 민간시장의 주요 행위자가 되면서, 적어도 비공식적으로는 그때 이후 나아졌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은 당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질문 공세를 받지는 않았다.

나는 크리스틴 안과 그리고레 스커를러토이우 두 사람을 모두 안다. 그들은 북한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나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두 사람의 견해를 존중한다. 그들은 상호 보완적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 행진을 조직하는 어떤 사람이 한쪽의 인권 기록을 맹렬히 비난하기 위해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키고 한반도 통일을 촉진하는 데 초점을 맞추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이는 마치 야구방망이를 축구 경기에 가져오는 사람 같다. 그것은 이 경기장에는 잘못된 도구다.

똑같은 것을 1994년 북한과의 핵 협상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당시 클린턴 미국 행정부는 구체적인 평화 만들기와 핵 비확산 목표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인권 이슈를 제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란 협상팀도 이란 핵 협상가들을 다룰 때 핵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관심사는 이란의 핵 시설들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평화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협상가들이 인권 문제를 도외시한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또 다른 기회에 인권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을 가로막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성들의 비무장지대 평화 걷기 행사가 정말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계의 관심을 붙잡고 모든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협상 쪽으로 방향을 돌리도록 돕는 상징적 행위를 필요로 한다. 지난 수년간 한반도 이슈를 다뤄온 사람들은 비무장지대의 남쪽과 북쪽 모두에서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이 남자들은 별로 성취한 게 없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그래서 이 일단의 용감한 여성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들을 지원하자.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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