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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아베의 외교, 박 대통령의 외유 / 박민희

등록 2015-04-22 18:42수정 2015-04-22 18:42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있을 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역사적인’ 미국 방문 길에 오른다.

27일 미-일 외교·국방장관 회담, 28일 미-일 정상회담,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로 이어지는 아베 총리의 여정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미-일 동맹의 새 시대를 예고한다.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도 변화의 격랑을 몰고 올 것이다.

70년 전 한·일의 운명은 미국의 냉전 전략에서 결정됐다. 2차대전의 적국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일본을 무장해제하고 전쟁 책임을 철저히 추궁하려던 애초의 정책을 포기하고 일본의 재무장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소련과의 냉전 대립 구도가 뚜렷해지고 애초 방공의 보루로 점찍었던 중국 장제스 정권이 공산당에 패배하자 미국의 전략적 계산이 변했다. 1951년 9월8일 체결된 일본과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 침략의 최대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은 제외됐다. 그날 밤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됐다.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일본을 재무장시키고 일본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기지 사용을 보장받는 것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최우선 목표가 됐다. 일본 전범들은 미국의 면죄부를 받았다.

2015년에는 미국의 전략과 일본 우파들의 염원이 교묘하게 맞물리고 있다. 아베 총리의 방미 기간에 개정되는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은 중국의 부상이라는 새 시대에 맞춘 ‘미국 동아시아 전략 2.0’, ‘제2 샌프란시스코 조약’ 시대의 청사진이다. 핵심은 미-일 동맹을 전세계에서 함께 싸우는 글로벌동맹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일본을 대중국 견제의 확실한 대리인으로 내세워 ‘아시아 회귀’ 전략에 화룡점정의 획을 긋는다. 일본은 이에 적극 호응하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자위대를 해외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는 군대”로 만들고, 평화헌법 체제를 깨고 강한 일본으로 변모하려는 ‘정상국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미국은 미-일 동맹 강화를 반석 삼아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어서, 한국의 외교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미국 고위 관리들은 최근 일본이 이만큼 사과했으면 됐으니 한국이 중국과 손잡고 일본의 사과를 압박하는 행동은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2차대전 종전 70돌이 되는 올해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며 일본의 침략 책임에 물타기를 해온 아베 총리가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도록 미국이 무대를 마련해준 데서 이런 태도는 절정을 이룬다. 29일 미국 정치인들이 아베 연설에 환호하면서 다시 한번 일본의 전쟁 역사에 면죄부를 준다면 거센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한-미-일 협력과 한-일의 화해를 바란다면 아베 총리에게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외교의 무력한 미국 눈치 보기다.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일 관계의 핵심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정작 아베 총리가 위안부는 ‘(국가 책임이 없는) 인신매매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차관보가 이 발언을 지지하는 상황에 우리 정부는 침묵했다. 미국과 일본은 ‘자위대가 한반도 영역에서 군사활동을 할 경우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개정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에 대한 우리 외교는 무력하기만 하다.

박민희 국제부장
박민희 국제부장
이 상황에서 한국 외교의 사령탑은 어디 있는가. 아베 총리가 동아시아의 미래를 바꿀 전략을 짜느라 분주한 동안 지구 반대편에서 실속 없는 ‘세일즈 외교’ 구호만 외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도피성 외유는 한반도의 미래에 깊은 후유증을 예고한다.

박민희 국제부장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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