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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번역원 기능 강화가 답이다

등록 2015-04-23 18:30수정 2015-08-04 00:44

“공청회 다시 하시오!”

지난 15일 오후 한국언론회관 20층 국제회의장. ‘3대 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향’ 정책토론회 도중 객석에서 외침이 터져나왔다. 토론회는 사회간접자본(SOC), 농림·수산, 문화·예술 세 분야 공공기관 기능을 점검하고 통폐합을 포함한 ‘조정’ 방향을 모색하고자 마련되었다. 기획재정부가 후원한 이 토론회에서 수렴된 의견은 새달 13일로 예정된 국가재정전략회의에 보고될 예정이라고 했다. 토론회장은 빈자리를 찾을 수 없도록 꽉 찼다.

문화·예술 분야 발표를 맡은 박한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경영평가팀장의 발제는 아름답지만 추상적인 말로 가득했다. ‘핵심역량 중심 기능강화’ ‘연계성 강화’ ‘상생 발전과 시너지 창출’… 그 자체로는 토를 달거나 반대할 까닭이 없는 가치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방청객들이 궁금해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쏙 빠지고 없었다. 토론회가 기관 통폐합의 명분을 쌓기 위한 요식행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웠다. 객석의 외침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토론회에서 나눠준 자료집에 따르면 이날 논의 대상이 된 세 분야의 기능 재편 시한은 올해 말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한국문학번역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의 폐지가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사업을 주관하는 기획재정부는 16일 내놓은 ‘정책브리핑’에서 “공공기관 기능 점검은 현재 검토 중으로 전혀 확정된 게 없다”고만 밝혔다.

15일 토론회에서 발표자는 문화·예술 분야 공공기관 39개 가운데 46%가 50인 미만 소규모 기관이라는 점을 통폐합 논리의 유력한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작은 기관들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규모의 경제’식 논리를 문화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토론자로 나온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도 그런 취지에서 반대 의견을 밝혔다. “문화·예술 분야가 다양성을 본질로 삼기 때문에 잘 섞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합쳐 놓을 경우 고유의 장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과 통합 말이 나오는 한국문학번역원(번역원)으로 범위를 좁혀 보자. 양쪽이 하는 일이 겹치는데다 번역과 출판, 산업을 하나로 묶으면 가외의 상생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통합론의 근거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산업’ 논리이지 ‘문화’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진흥원과 번역원을 합쳐 놓으면 문학은 사라지고 출판만, 아니 산업만 남을 것”이라는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의 우려는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번역원 사업 대상이 이른바 본격문학에 치우쳐서 장르문학이나 실용서처럼 해외 시장의 요구가 많은 분야가 오히려 소외된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15년 동안 쌓아온 경험과 네트워크를 무시하고 새로 시작하는 게 능사가 될 수는 없다. 번역원은 2001년 설립 이후 올해 1/4분기까지 32개 언어권 1065건의 번역을 지원했으며, 번역 인력 양성을 위해 2008년부터는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실효 없는 통합보다는, 이참에 본격문학은 번역원이 맡고 장르문학과 실용서 등의 사업은 진흥원으로 이관하는 식으로 번역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역발상을 주문하고 싶다.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마침 국회에서는 도종환 의원이 대표발의한 문학진흥법 제정 논의가 한창이다. 새달 4일 공청회를 앞둔 문학진흥법안에 따르면 번역원은 기존의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서 문학진흥법으로 설치 근거를 옮겨 올 예정이다. 번역원 통폐합 논의는 문학진흥법에 관한 국회 결정을 지켜본 뒤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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