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상징천황제와 평화주의 / 이영채

등록 2015-04-26 18:50

지난 4월9일 일본 ‘천황’과 황후는 전몰자 위령을 위해서 아시아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팔라우를 방문하였다. 천황 부부가 방문한 펠렐리우 섬은 일본군 약 1만명, 미군 약 1700명이 희생된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격전지였다. 정론으로 불리는 <도쿄신문>조차도 천황 부부가 전후 70주년을 맞이해, 국적을 불문하고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위령의 여행’을 자신들의 강한 희망으로 실행하였다고 평화주의 ‘천황’의 이미지를 기사화하였다.

천황 부부는 전후 50년이 되는 1995년에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전후 60년이 되는 2005년에는 사이판을 방문하였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아베 내각의 등장 이후에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평화헌법 9조’를 지키려는 적극적인 정치 행보조차도 마다하지 않는다. 2013년 12월 특정비밀보호법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다음은 집단적 자위권 승인이 예상되고 있는 시점에서 천황은 “점령하에 있던 일본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중요한 것으로서 일본국 헌법을 만들었다”며 평화헌법 수호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명하였다.

일본국 헌법 제1조는 천황을 일본국과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전전의 신적인 절대권력으로서의 천황제가 가져온 폐해를 반성하며, 천황의 정치개입의 권한을 거세하고 신에서 인간으로 연착륙시킨 소위 상징천황제를 의미하고 있다. 일체의 무력을 거부하고 절대평화주의를 추구하려는 헌법 9조와 함께 전후 일본평화국가의 양대 축이었다.

아베 내각의 일방주의와 평화파괴주의에 피로를 느끼는 지식인들과 시민운동가들조차도 천황 부부의 일련의 평화주의 행보에 지지를 보내는 움직임조차 일고 있다.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문학상을 석권한 이케자와 나쓰키는 한센병 환자 및 미나마타 피해자, 3·11 재해지역을 방문한 미치코 황후에 대해서 “우리들은 역사에 예가 없는 새로운 천황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자각적이고 명쾌한 사상의 표현자인 천황을 이 국민들이 갖게 된 적은 없었다”(2014년 8월5일)고 평화주의자 천황에 대한 감정이입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다.

일본헌법의 제도적 한계 내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천황 부부의 고뇌와 노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상징천황제의 탄생 배경과 제도적 역할이 과연 전후 일본의 진정한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시스템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구별해야 할 것이다.

2000만명이 희생된 전쟁에 있어서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은 누가 보아도 명백해 보였다. 하지만 천황제를 이용하여 전후 통치를 실시하려는 미국 점령군과 모든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일본의 ‘국체’만은 유지하려는 일본 내의 보수세력들의 합작에 의해 전범으로서의 천황은 기소를 면하였다. 쇼와 천황 자신도 생존을 위해서 이들 세력과 정치적 타협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후 일본 사회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무반성과 무책임주의의 근원은 바로 이 상징천황제의 탄생과 동전의 양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상징천황제를 비판하는 신좌익 평론가 오타 마사쿠니는 “자연재해와 인적재해의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위령하는 기도의 정치적 행위는 무책임 제도인 상징천황제를 계승한 그 지위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비판한다. 오히려 천황 부부의 평화 행보는 아베 내각의 군국주의 행보에 대한 보완효과로서 극우보수정치 연장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비판한다.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1989년 쇼와 천황의 서거 이후 즉위한 아키히토 천황은 기자회견에서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답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응답을 회피하였다. 아마도 아키히토 천황은 서거하는 그날까지 아버지의 전쟁 범죄에 대해서 언급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징천황제가 진정 일본 평화 구축의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위령의 여행도 중요하지만, 누구도 기소할 수 없었던 아버지 쇼와 천황의 전쟁 범죄에 대해 천황 스스로가 먼저 국민들에게 인정하는 결자해지를 이루어낼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지방으로 소개된 각자의 경험에 의해 누구보다도 전쟁의 참혹함을 알고 있는 천황 부부이기에 전후 70년을 일본과 동아시아 화해의 진정한 ‘위령의 해’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