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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은 사기였나?

등록 2015-05-14 18:35수정 2015-05-18 08:55

미국 언론인 시모어 허시가 쓴 오사마 빈라덴 제거 작전에 대한 폭로 기사가 최근 파문을 일으켰다. 기사의 요점은 두가지다. 첫째, 빈라덴은 파키스탄이 관리하고 있었다. 둘째, 미국은 이를 제보받고는 파키스탄과 거래해 그를 제거했다. 구체적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았으나, 수없이 제기된 주장이다. ‘테러와의 전쟁’ 당사자인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 미국·파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지난 역사적 관계가 이런 추론과 주장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1979년 시작된 소련의 아프간전쟁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무장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돈을 대서, 파키스탄을 통해 이슬람주의 세력을 무장시켜 소련에 대항하게 했다. 모든 게 거기서 시작됐다. 세 나라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거대한 위협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알고서도 눈감았다.

미국은 소련의 곤경을 즐기려고 눈감았다. 파키스탄은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고 싶었다. 아프간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탈레반을 키웠고, 인도와의 카슈미르 분쟁에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활용했다. 사우디도 왕족과 부호들의 은밀한 뒷돈이 알카에다 등에 가는 것을 눈감아줬다. 자국 내 근본주의 성향의 와하비즘 세력을 달래고, 이란의 시아파 견제를 위해서였다.

9·11 테러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걷잡을 수 없는 위협으로 떠올라도 이런 관계는 유지됐다. 파키스탄의 이중 플레이는 더 심해졌다. 미국에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는 대가로 군사 및 경제지원을 따내기 위해서는 이슬람주의 세력의 항상적 위협이 필요했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붕괴된 탈레반 정권과 알카에다 세력들은 모두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에 피난처를 구했다. 파키스탄은 이들을 적당히 관리했다. 미국도 이를 알면서도 눈감아줬다.

미국의 아프간전쟁의 절정인 토라보라 전투에서 빈라덴이 도주한 것도 파키스탄이 배후의 도주로를 터줬기 때문이다. 미국도 추가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도주를 방조했다. 그때 미국의 중부사령부 지휘부는 이라크 침공 작전 수립에 열중하고 있었다. 곧 있을 이라크전쟁에 대비해 많은 병력이 아프간에서 발목이 잡히기를 원치 않았다.

삼국지에는 제갈량이 남만 지도자 맹획을 7번 잡고 7번 풀어주는 ‘칠종칠금’ 얘기가 있다. 제갈량은 맹획을 잡아서 처형한들 또 다른 맹획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맹획을 감화시켜 관리하는 게 남만을 통제하는 길이란 거다.

어쩌면 빈라덴은 미국과 파키스탄에 맹획이었다. 파키스탄은 빈라덴을 통해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적당히 관리했고, 미국도 이를 모른척했다. 허시의 보도 뒤 적어도 파키스탄은 빈라덴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이 보도 뒤 파키스탄의 한 매체는 행방의 제보자로 파키스탄정보부(ISI)의 우스만 칼리드 준장을 특정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테러와의 전쟁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그 하이라이트인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명분은 조작됐고, 주적인 빈라덴은 파키스탄의 손바닥에서 놀았다. 지금도 사우디 등 중동 수니파 국가들은 비인도적 만행을 자행하는 이슬람국가(IS) 격퇴는 시늉만 내다가,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에 대해서는 득달같이 전쟁을 벌인다. 미국, 파키스탄, 사우디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키워줬고, 또 은밀히 거래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다. 문제는 그 결과 지금 이슬람권은 알카에다를 능가하는 이슬람국가가 등장했고, 온통 내전과 테러의 도가니가 됐다는 거다.

자신의 행위가 의도하지 않은 범죄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고서도 그 행위를 하면 미필적 고의의 범죄다. 테러와의 전쟁은 적어도 미필적 고의의 사기가 될 수 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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