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반데룽(Ringwanderung)이란 말이 있다. 방향감각을 잃어서 직진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같은 자리를 둥글게 배회하는 것을 뜻하는 등산 조난용어다. 교훈적인 에세이의 필자들이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인생에서도 링반데룽 같은 역경을 만날 수 있다고 충고하는 글이 넘쳐난다. 시간을 직선으로 상상하고 인생을 길이라고 여기는 흔한 비유가 그런 글을 쓰게 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진도를 좀 나가야 하는데 가도 가도 제자리라는 거다. 그런데 그게 꼭 나쁜 일일까? 러닝머신도 길을 둥글게 말아 넣었으니 링반데룽이다. 열심히 달려도 제자리지만 한결 건강해져서 도착한다. 결혼식에서 주고받는 반지(ring), 링반데룽이다. 평생토록 사랑하는 당신 주변을 빙빙 돌면서 딴 곳으로 가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제 꼬리를 물고 있는 우주뱀, 링반데룽이다. 꼬리를 먹은 만큼 머리가 자라서 저 뱀은 영원불멸의 상징이 되었다. 해마다 돌아오는 기념일들, 링반데룽이다. 우리는 매년 3월이면 독립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8월이면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10월이면 한글의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그리고 올해, 4월16일이 추가되었다. 아픈 기념일이긴 하지만, 수학여행 떠난 아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기꺼이 기다릴 것이다. 조난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말을 “사랑해요”라는 고백으로 채운 아이들과 지금도 그들을 기다리는 순결한 부모들의 날, 링반데룽이다.
권혁웅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