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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숫자 세기

등록 2015-05-19 19:15수정 2015-05-20 08:24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예수 앞으로 데려왔다. “모세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어쩌시렵니까?” 예수가 말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쳐라.” 모두가 움찔하더니 하나둘씩 여자와 예수를 떠났다.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얘기다. 그때 예수는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성경은 그 글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해 알려주지 않는다. 그분은 무엇을 쓰고 있었을까? 어떤 이들은 인류 최초의 기호가 사냥한 짐승의 마릿수를 세기 위해 그어놓은 금이었다고 말한다. 기호가 처음부터 죽임과 죽음의 표지였다는 얘기다. 예컨대 1은 ‘한 마리를 죽임’ 혹은 ‘여기에 죽은 짐승 한 마리가 있음’이라는 표시다. 간음한 여자를 붙잡아 온 이들의 생각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곧 죽을 여자를 손가락질하고 있다. 그들은 손가락을 들어 여기 돌로 쳐 죽일 여자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의 손가락은 아무것도 가리키거나 세지 않는다. 어쩌면 예수는 무용(無用)한 것을 셈으로써 무죄(無罪)한 이가 된 것은 아닐까? 근래 실용(實用) 혹은 유용(有用)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학문과 학과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대학가를 휩쓸고 있다. 2차 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들은 격추한 적기의 숫자를 조종석 옆에 정(正)자로 새겨놓았다. 사냥한 짐승의 마릿수였다. 전시니까 그렇다 치자. 그런데 죄 없는 저 학문들은 말살해야 할 적도 아니지 않은가.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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