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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촘스키와 소세키

등록 2015-05-26 18:57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촘스키가 한번은 이런 문장을 썼다. “무색의 초록 개념들이 격렬하게 잔다.”(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 문법에는 맞아도 의미상으로는 통하지 않는 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예로 든 문장이다. 그런데 말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새롭게 뜻을 이루기도 한다. 제빛을 잃은 초록이라고? 매년 가을이 되면 초록은 무색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초록의 개념이라고? 생명, 생태, 지속가능성 등을 내건 녹색당의 이념이 바로 이것 아닌가? 격렬하게 잔다고? 간밤 딸의 잠이 바로 그랬다. 신생아 단계를 막 졸업한 딸은 성장통 때문에 내내 몸을 뒤틀며, 찡찡대며, 가끔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잤다. 이렇게 본다면 촘스키의 말은 비문(非文)이 아니라 비유문(比喩文)이다. 한번은 소세키가 번역을 하다가 “I love you”란 문장을 만났다. 고심 끝에 그는 “달이 참 좋네요”라고 옮겼다. 사랑이란 말을 몰라서가 아니다. 상대방에게 곧장 가닿는 말, 내 진심을 직접 전할 수 있는 말이란 없는 법이다. 저 문장을 “사랑해”라고 번역하는 순간, 내 마음은 금방 세속적인 게 되어 버린다. 바람둥이나 사기꾼도 같은 말을 쓴다. 요즘은 유행가에서도 사랑이란 말은 너무 흔하다고, 그래서 너에게만큼은 쓰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본다면 소세키의 말은 우회로가 아니라 지름길이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횡설수설하는 남자, 사랑하는 애인의 제안이 좋으면서도 싫은 척하는 여자, 모두가 언어의 귀재들이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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