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사상 최저인 연 1.5%로 기준금리를 또 내렸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부작용을 감수하고 한 일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 상황을 좋지 않게 본다는 뜻이다. 실제 그렇다. 수출은 감소세다. 내수도 미약한데 메르스까지 번지고 있어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그러니 물가가 불안하지 않을 때 돈을 더 풀자는 선택을 한 것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금리가 이제 바닥을 쳤다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 이번 금리 인하의 경기부양 효과가 클 것 같지는 않다. 이제 자연스레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지에 눈길이 쏠린다. 정부는 빨리 추경을 편성하라는 목소리가 퍼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경기 상황을 보면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추경을 편성하려면 국채를 발행해 나랏빚을 더 늘리게 될 것이다. 정부가 나라살림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재작년 정부는 17조3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추경을 편성했다. 이 가운데 12조원은 정부 지출을 새로 늘리려는 게 아니라, 세수가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해엔 애초 짠 세입예산보다 세수가 11조원 남짓 덜 들어왔다. 추경을 편성해야 계획했던 지출을 다 할 수 있었지만, 정부는 지출을 안 하는 쪽을 선택했다. 국회에서 두들겨 맞는 사태를 피하자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반복되는 것은 정부의 경제예측 능력이 엉망이어서일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정부는 경제운용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성장률’ 수치로 말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장담하는 성장률에 맞춰 예산을 짠다. 하지만 예산안을 짤 때 제시한 것만큼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책이 잘 먹히지 않는 것이다. 세수 결손은 그 여파이고, 이를 보전하지 않을 경우 성장률을 더 갉아먹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사실 올해 예산은 매우 ‘확장적’이었다. 애초 중기재정운용계획보다 8조원이나 많게 짰다. 기금운용 계획을 변경해 작년 예산 대비 19조6천억원을 증액했다. ‘웬만한 추경을 한번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정부는 강조했다. 그런데 올해 경제 상황도 정부의 장담을 크게 빗나가고 있다. 정부는 올해 실질성장률이 3.8%에 이를 것이라고 했지만, 메르스의 영향이 없었더라도 3%조차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변이 없는 한 올해도 세수 결손이 불가피해 보인다.
추경을 거론하려면, 양치기 소년 같은 행태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한다. 비록 일자리의 질이 좋지 않다고 해도 지난해 53만여개의 일자리가 늘어난 것은 정부가 내세울 만한 성과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집값과 전셋값을 끌어올리고 가계부채를 늘린 것밖에 없다.
주력 수출산업은 경쟁력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고 있어 원화를 약세로 돌리는 단방약도 쓸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도 서둘러 많이 맺었고, 기업의 법인세 부담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저 수준으로 이미 낮췄다. 가계로 하여금 수출기업에 보조금을 주게 하여 수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률을 높이던 시대는 이제 ‘추억’으로 돌려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가계가 지갑을 더욱 옥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구조적인 내수 부진으로 장기 침체 조짐이 뚜렷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취임 때 기업에서 가계로 돈을 돌려야 한다고 한 것은 그저 선거용 ‘립서비스’였던 것으로 판명나고 있다. 나라살림의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고 어디에 써야 할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빚을 더 내 달라고 하려면 그에 앞서 정책에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염치는 있어야 한다.
정남구 경제부장 jeje@hani.co.kr
정남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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