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정권이 목표로 삼고 있는 안전보장 정책의 전환은 ‘일본이 걸어온 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란 질문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일본이 패전한 지 70년이 되는 날을 앞두고 우리는 (일본) 전후사의 의미와 국가 노선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말 방미 때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정치가와 국민들을 향해 전후 일본의 민주정치 안정과 번영을 자랑스럽게 밝히면서 이는 미국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협력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은 옳다. 일본은 사실상 미국이 원안을 만든 헌법 아래서 민주주의와 번영을 현실화했다. 이런 큰 흐름은 포츠담선언에 드러나 있는 일본 재건 노선 바로 그것이다.
아베 총리는 5월20일 일본 국회에서 열린 당수토론에서 시이 가즈오 일본공산당 위원장의 질문에 ‘포츠담선언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은 공부가 부족한 것이지만, 자신이 미국에서 자랑스럽게 말한 전후 일본이 걸어온 길이 포츠담선언에서 유래했다는 것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
아베는 예전부터 현행 일본 헌법을 “꼴사나운 것”이라 불러왔고, 개헌이 자신의 사명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그가 이런 확신에 충실하다면, 미국에서 미국이 일본 헌법을 억지로 밀어붙였던 것에 항의하고 조속히 자주 헌법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을 향해선 전후 민주체제를 만들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한 뒤, 일본에 돌아와선 헌법 개정을 외친다. 아베는 불성실함에 대해선 실로 비교할 대상이 없는 정치가인 것이다.
아베 총리가 존경하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한 뒤 숙원이었던 헌법 개정과 국군(자위대가 아닌 정식 군대) 설치까지 성공했다면, 일본은 1960년대 말부터 한국처럼 베트남전쟁에 미국과 함께 참가해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일본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1960년의 안보투쟁에서 시민들이 기시 노부스케 총리를 퇴진으로 몰아넣어 전후헌법 체제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시민운동은 이후 자민당 정권에도 큰 교훈을 가져다줬다. 자민당도 국민도 이데올로기 투쟁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정치와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경제발전에 전념하는 것으로 번영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아베 정권이 헌법 9조의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했을 때 아베 총리는 일본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무력행사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안전보장법제에선 말을 바꿔 ‘(세계) 평화를 만드는 작업에 있어 일본도 일단(의 의무를) 담당하는 게 무력행사의 목적’이라고 하고 있다.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구호 아래 후방지원, 즉 병참을 통해 미국 등 우호국이 ‘평화의 적’을 징벌하는 전쟁에 참가해 지구상 어디라도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베트남전에서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시작한 전쟁 가운데 대의 없는 무력행사였던 예도 있다. 미국과 운명을 함께해 무력행사를 하는 것은 일본의 안전과는 무관하다.
결국 아베 총리의 머릿속에선 전후헌법 체제를 파괴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 안전보장 체제는 그를 위한 수단이다. 자신의 주관적 만족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리 모순을 지적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상태야말로 일본의 입헌민주주의의 ‘존립위기 사태’이다.
안보법제를 둘러싼 국회 심의는 향후 일본 민주주의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 분기점이 될 것이다. 여당의 압도적인 수적 우위 속에서 법안 성립을 저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법안 심의 과정에서 정부 지도자의 사고능력 상실과 불성실을 폭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런 정권을 지속시키는 것이 일본인의 생명과 안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국민에게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최근 야당과 언론에 있는 지식인들의 분투로 (안보법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그려온 법안 성립의 시나리오가 무너지고 있다.
야마구치 지로 일본 호세이대학 교수
야마구치 지로 일본 호세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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