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인가 굴을 담뿍 넣고 뽀얗게 순두부를 끓였더니 아이가 순두부가 뭐 이래 했다. 싱거우면 양념간장 살짝 넣어 먹으라고 했더니 고개를 내젓는다. 집에서 해주는 밥만 먹을 때는 잘 먹더니 밖에서 무엇인가를 사먹게 되면서부터 집의 반찬이 어딘가 미흡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포장된 순두부 양념을 사다가 해주었더니 바로 이 맛이야 하며 쩝쩝거리며 먹었다. 포장에 쓰여 있는 대로 하니까 너무 짜고 맵고 영양가라곤 없어 보이는 양념맛뿐인 그 순두부를 말이다. 명절이나 제사 지내고 나면 남은 잡채로 고기 더 썰어 넣고 떡국떡 썰어 넣고 참기름으로 마무리해 윤이 반지르르하게 해주던 떡볶이를 잘 먹던 아이는 어느새 이게 무슨 떡볶이야 한다. 새빨갛게 달고 매운 밀가루 떡볶이에 맛을 들인 다음부터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입맛이 그렇게 되었다. 간이 세진 것이다. 음식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대신 재료들을 다 때려넣고 입에 짝짝 붙는 강렬한 맛으로 승부하는 음식들을 찾게 된 것이다. 밖에서 사먹는 음식에 길들여지면 집밥은 밋밋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음식점 영업에서 음식 재료에 들어가는 비율은 25% 이하여야 하고 30%가 넘으면 망한다는 게 정설이다. 집세가 4분의 1, 인건비가 4분의 1이고 기타 관리비와 음식점 내느라고 받은 대출이자까지…. 물가는 들쑥날쑥, 가겟세는 항상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고 불경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자영업이 대세인 음식점들이 줄일 거라곤 재료와 자신의 인건비밖에 없고 그걸 못 맞추면 피로와 적자 누적으로 3년 안에 망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5000원에서 1만원까지의 보통의 한끼 밥에서 맛을 내려면 양념이나 간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재벌급 기업들이 음식 재료의 수입과 유통을 장악하고 재벌이 운영하는 큰 음식점들이 여러 브랜드의 이름으로 목 좋은 상권을 차지하고 있다. 구멍가게나 동네시장이 백화점이나 편의점과 마트들에 밀리듯이 자영업 음식점들도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한다.
요즘 아무리 중요한 이슈가 있어도 인터넷 검색 상위권에 오르는 것은 음식과 셰프의 이야기, 또 그들의 레시피다. 셰프만 셰프가 아니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은 먹는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고 배우도 가수도 모델도 운동선수도 모두 텔레비전에 나와 칼질을 한다.
현란한 칼질과 전문 셰프들의 보여주는 레시피들은 그림의 떡이긴 하지만 하루 세끼 식단을 걱정해야 하는 나로선 오늘은 저걸 해먹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주기 때문에 유용하게 기억하곤 한다. 소박한 집밥도 대세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유명하다는 방송을 보다가 기함을 했다. 음식에 들어가는 간이 너무 세서이다. 달고 짜고 맵고 강렬하고…. 저렇게 간이 세면 안 되는데 저걸 자신의 자녀에게 삼시세끼 먹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요리는 창조적인 작업이고 고도의 응용력이 요구되는 예술이다. 요리사라는 직업은 노동강도가 엄청 심하다. 다른 직업과 달리 요리사는 싫어하면서 절대로 할 수 없는 직업이다.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 돈을 내고 가면서도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고무되어 그 고된 칼질과 감자깎기 등의 10여년 시다 생활을 통해 요리사가 되는 것이다.
평생 어머니들은 지갑과 의논하여 어떻게 하면 맛있게 영양가 있게 한끼를 먹일까, 이 밥을 먹고 내 아이가 공부도 하고 마음도 몸도 튼튼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한다. 음식 프로그램이 대세가 된 마당에 공개적으로 음식을 소개하는 요리사들이 짜고 맵고 단맛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로잡아주는 요리들을 소개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법문 위에 밥문 있다”고 어떤 스님이 말씀하셨다. 한끼 식사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덜 달게 덜 짜게 덜 맵게 하면서도 맛을 살리고 영양의 균형과 칼로리, 소금과 설탕과 기름의 과다한 사용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들을 고려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집의 밥이 맛이 부족했다고 했던 아들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밖에서 먹는 음식이 모두 너무 달고 짜고 매울 뿐 진정한 맛을 찾을 수 없다면서 집밥을 즐긴다. 나를 부엌에 계속 붙들어 두려는 심보가 아닌가 싶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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