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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그리스 위기는 독일 위기이다

등록 2015-07-09 18:44

어린이가 큰불을 냈다. 혼나야 한다. 그렇다고, “네가 낸 불이니, 네가 꺼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들이 꺼야 한다.

그리스 위기에 그 정부와 국민은 혼나야 하지만, 이들에게 위기를 수습하라고 할 수는 없다. 어린이가 큰불을 끌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가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어린이에게 불을 끄라고 다그쳐봤자, 불만 번진다. 유럽의 어른인 독일이 어린이인 그리스한테 한 일이다. 그리스는 불을 끄라는 호통에 갈팡거리기만 했다. 그러자, 독일은 뒤에서 그리스를 껴안아 손을 잡고는 불을 끄게 했다. 불은 번지기만 했다.

그리스로부터 불이 번진 유로존은 독일에 꿩도 먹고 알도 먹게 하고, 일석삼조의 이득을 줬다. 유로화가 통용된 2000년부터 금융위기 전인 2007년까지 독일의 수출은 세배로 늘었다. 중국 특수도 있었으나 무역흑자는 2천억유로에 육박했다. 유럽연합 회원국에 대한 무역흑자는 464억유로에서 1265억유로로 늘었다.

반면, 독일에 대한 그리스의 무역적자는 30억유로에서 55억유로, 이탈리아는 96억유로에서 196억유로, 스페인은 110억유로에서 272억유로, 포르투갈은 10억유로에서 42억유로로 늘었다. 부채위기를 겪는 이들 나라는 게으른 ‘돼지들’(PIGS)이라고 폄하된다. 하지만 독일 무역흑자의 일부는 이들 돼지들의 살코기였다.

유로존에서 독일 산업, 특히 제조업은 펄펄 날았다. 무역장벽이 없어지고 단일통화가 유통되는 유로존은 독일 제조업의 텃밭이 됐다. 더구나, 독일은 무역흑자의 증가에 따른 부작용인 통화절상도 걱정하지 않았다. 유로화는 그리스 등에는 고평가 통화이나, 독일에는 저평가 통화였다.

2008년부터 발발한 금융위기에 이어 유럽의 부채위기에서도 독일은 오히려 더 질주했다. 유럽 국가들의 부채위기는 독일로 돈이 밀려들게 했다. 독일의 국채 이자율은 1% 안팎으로 떨어져, 독일은 거의 무이자로 돈을 쓸 수가 있었다. 유로화는 평가절화되어, 독일 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였다.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2013년 들어 2천억유로를 넘어섰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올해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 대비 7.9%로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은 독일 경상수지 흑자의 기록적인 증가가 유로존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국내총생산 대비 8%에 이르는 독일 경상수지 흑자는 적정 수준보다도 6%포인트나 높고, 유로화는 부채위기 뒤 절하됐어도 독일한테는 여전히 18%나 저평가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흑자국이 됐다.

유럽과 미국의 언론, 브루킹스연구소 등 싱크탱크들은 “독일의 기록적인 무역흑자는 그리스보다도 유로에 더 큰 위협”이라고 지적한다. 통제 안 되는 그리스 부채위기의 뒤쪽에는 통제 안 되는 독일의 흑자위기가 있다.

독일이 마냥 책임을 회피한 것은 아니다. 1천억유로에 상당하는 그리스의 부채를 경감하는 데 독일이 앞장섰고, 지금도 독일은 그리스 부채 682억유로나 껴안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라는 어린이에게 여전히 불을 끄라고 닦달하고 있다. 부채위기가 지속된 지난 6년간의 경험은 그리스가 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는데도 독일은 여전히 자신이 직접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유럽 통합은 숭고하고 진보적인 과제다. 독일은 이를 위해 낮은 자세로 많은 것을 양보하며, 유로화 도입까지 끌어냈다. 독일은 유로존에 난 불을 끄고 유럽 모두를 살리는 지도력을 보일 수 있을까? 그리스 위기는 독일 위기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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