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같은 한달이었다. 신경숙의 표절을 고발한 이응준의 <허핑턴포스트> 기고 이후 한달, 한국 문학은 유례없는 사회적 관심과 언론의 조명 대상이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모를까, 이런 정도의 열기를 다시 기대하기란 아마도 무망할 것이다. “올해 문학계의 최고 흥행작은 작품이 아니라 스캔들이 될 모양”이라고 젊은 평론가 임태훈은 비꼬듯 말했다. 15일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 공동 주최로 열린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 토론회에서였다.
비슷한 토론회가 먼저도 있었다. 6월23일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이름으로 마련한 토론회였다. 불과 한달새 두차례 토론회가 열렸다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긴급하고 심각하다는 뜻일 테다. 그렇다면 두 토론회를 거치면서 그리고 그사이 쏟아진 언론 보도와 에스엔에스(SNS) 여론 등을 통해 한국 문학은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는가.
신경숙의 표절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 같다. 평론가 윤지관이 14일 “미숙한 시인은 흉내 내지만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는 엘리엇의 말을 인용하며 표절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지만, 그다지 많은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창작 행위가 모방과 극복의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전설’에서 신경숙은 자신이 엘리엇이 말하는 ‘좋은 시인’임을 보여주었다”는 대목은 여론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창비 문학출판부의 궤변을 다시 보는 느낌을 주었다.
표절을 방지하고 찾아내며 처벌하기 위한 방안 마련도 소홀히 다룰 일은 아니지만, 사태 발생 뒤 한층 절박한 과제로 대두한 것이 문학권력 문제다. 이와 관련해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15일 토론회에서 “창비와 문학동네의 일부 편집위원들은 이번 계제에 명예롭게 용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민간 사업체인 출판사 편집위원의 거취에 대해 이런 조언을 할 수 있는 근거로 그는 “아직 ‘한국 문학’과 잡지 자체를 공공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들었다.
거칠게 말해서 천 교수의 의견이 ‘망가진 것을 고쳐 쓰자’는 쪽이라면 ‘이참에 버리고 새것을 마련하자’는 생각도 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문학동네에는 처음부터 기대가 없었고 창비에 대한 기대도 오래전에 거두었다”며 “2000년 무렵 문학권력 논쟁을 제기한 선배 세대로서 진작 제도 문학 ‘바깥’을 건설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발표를 맡은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304낭독회’와 작가 중심 잡지 <악스트> 창간 등에서 새로운 문학장(場) 출현과 대안적 문학 생산 주체 생성의 가능성을 보았다. 토론자 임태훈은 “한국 문학의 기초적인 토대인 출판 생태계를 시장 기반 수익 창출에서 공공 기반 비용 조달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언론의 책임을 묻는 아픈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원로 작가 조정래는 신경숙에게 절필을 권유하기도 했다. 비평가 ‘선생님’들이 문제라는 작가 천명관의 <악스트> 인터뷰에 대해 손종업 선문대 교수가 ‘쓰레기’ 운운하며 반발(<근대서지> 2015년 상반기호)하는 등 전선이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문학동네는 비판적 논자들을 자사 주최 토론회에 초청했다가 이들의 반발을 샀고, 반대로 15일 토론회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은 거부했다. 창비도 불참했다.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문학권력 비판론자들과 그 비판 대상인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편집위원들이 두루 참가하는 토론회를 제안해 놓은 상태다. 그 토론회는 열릴 수 있을까. 열린다면 무언가 생산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bong@hani.co.kr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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