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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등록 2015-07-21 18:20수정 2018-05-11 15:20

딱 아들뻘이다. 마흔다섯, 국가정보원 직원….

아내와 어여쁜 두 딸, 부모도 생존해 있다. 개인적 비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국가정보원의 모든 업무에 책임을 져야만 할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다 안고 간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다 안고 갈 위치에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다 안고 간다’고 한 것이다.

아내, 부모, 두 딸에게 남긴 볼펜을 꾹꾹 눌러서 쓴 듯한 두장의 유서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생생하게 묻어난다. 어찌 이들을 남기고 죽을 수 있었는지…. 좋은 아버지였고 좋은 아들이었고 좋은 남편이었을 그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직장인 국정원에 보내는 유서도 한통 있다. 자세히 한줄 한줄 되새기며 읽어보았다. 유서라기보다는 보고서나 해명서, 윗사람에게 보내는 시말서 같다고나 할까. 도무지 같은 사람이 쓴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글이다. 정확하게 똑같은 필체로 그가 쓴 것임이 분명하지만 죽음에 앞서 그런 내용의 유서를 쓸 수 있었다는 것, 그렇게 쓸 수밖에 없도록 그를 몰아간 무엇인가가 개입된 죽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자살은 흔히 인간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하는 최후의 저항의 몸짓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서 구석구석 살펴보아도 그가 자존심이 실추되었을 상황은 보이지 않고 또 저항의 몸짓은 보이지 않고 직장에 대한 충성심만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그 가엾은 죽음과 유서를 가지고 놀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국정원 전직원 명의의 성명서다. ‘동료를 보내며’를 몇 번이고 읽어보았다. 국정원장의 결재까지 받았다고 한다. 음지에서 일한다는 국정원 직원들이 모두 몇명인지는 국민들이 알 수 없지만 직원 전체 명의의 성명서가 나온 것이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국정원이 비난받고 의심받는 일로 인해 그가 죽었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반성으로 숙연하게 보내야 할 일인데 봐라 죽으면서 이런 유서까지 썼으니 우리 국정원은 무죄가 아닌가라는 태도다. 딱 맞춤형 유서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이다.

새벽에 나가 번개탄을 사고 시골길에서 유서를 써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그것을 자살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타살이라고 나는 본다.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이 무엇일까. 이 죽음에 연대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같이 책임을 느껴야 하고 무엇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를 알고 있을 사람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안고 갈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물고기들이 떼지어 물속을 헤엄쳐 다니다가 도저히 자신들이 싸워 이길 수 없는 물고기가 나타나면 무리의 일부를 뭉텅 떼어주고 유유히 갈 길을 간다. 집단적 생의 한 모습이다. 작은 물고기 떼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물고기 떼가 유유히 헤엄쳐가는 모습이 국정원처럼, 그리고 죽은 사람은 조직을 위해 희생된 물고기의 모습으로 비친다. 내국인 해킹한 적도, 선거에 개입한 적도 없다고 유서에 쓰여 있다고 해서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오직 국정원만이 그러길 바라고 국민들이 속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70년대 김추자가 불러 유명한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사랑도 눈물도 웃음도 거짓말이라는 가사 때문에 금지가요가 되었다.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이었다. ‘사회에 불신을 조장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 우리 안보를 악화시키는 자해행위이며 일부 정치인과 정치적 공세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며 개탄스럽다…라는 성명서를 보며 오래전에 잊었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하는 노래가 떠올랐다. 유서 한장이면 있었던 일이 없는 일이 되는가. 국민을 천치바보로 아는가. 그의 죽음으로 이 문제를 툭 털고 갈 작정인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맞춤형 유서와 맞춤형 성명서를 국민들이 다 보았는데도 말이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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