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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터널처럼 외로워

등록 2015-07-26 21:37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네루다의 시를 읽다가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외로움을 참 멋지게 표현했구나 싶어서다. 외로움은 실체가 없는 것, 마이너스인 것, 아무것도 아닌 것에 빗대어져야 한다. 있어야 할 누군가가 내 곁에 없을 때 생기는 감정이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냥 혼자 있을 때 생기는 감정은 심심함에 지나지 않는다. 외로움은 구멍이나 우물, 터널처럼 실제로는 없으면서도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이거나, 지금은 ‘없는 사람’으로서 내 옆에 있거나, 숫자 0처럼 자신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존재를 크게 만드는 것이다. 1에 0을 하나 붙이면 10이 되고 둘을 붙이면 100이 된다. 외로움도 그렇다. 혼자인 나의 불행을 열배로도 만들고 백배로도 만든다. 서울시가 임산부 배려석을 핑크빛으로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선의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이긴 한데 거기 적은 문구가 논란을 키웠다.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니, 그럼 엄마는 뭐가 되지? 주인공을 실어 나르는 또 다른 의자인 건가? 아기는 핑크의자에 얹힌 엄마란 이름의 의자에 앉는 건가? 카시트처럼? 이런 상상력은 약자를 배려하면서 또 다른 약자를 차별한다. 하나를 더하고 하나를 빼지 말고 하나에 하나를 더해야 외로움이 발붙일 틈이 없어진다. 아기는 세상에 태어날 때 산도(産道)라는 이름의 터널을 지난다. 그곳을 지나면서 아기가 네루다의 말을 중얼거리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워.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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