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기업이란 무엇인가 / 조계완

등록 2015-07-27 10:54수정 2015-07-27 15:16

지난 50여일간 흥미진진한 싸움이 가열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공방에서 우리나라 사람치고 ‘국외자’는 거의 없었다. 이해당사자인 주주들이 ‘선수’였으나, 단 1주도 갖지 않은 사람까지 관전하는 논평자를 넘어 표대결에 개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이 자기 돈을 내 적립한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뿐만이 아니었다. 백기사로 나선 다른 기업들,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자산운용사들, 엘리엇의 소송을 심리한 법원, 사태를 연일 지상중계한 언론까지 어떤 의미에서 모두 선수로 뛰었다. 소액주주들조차 자기 이해에 충실한 의사결정이었는지 모호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헤지펀드에 맞섰다. 물론 ‘헤지펀드’의 위력 앞에 한국 경제의 태양(?)이 차갑게 식어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참가 선수들의 뇌리에 맴돌았을 터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단기적 주주가치를 넘어 좀더 먼 장래까지 고려한 인내심 있는 장기 이익을 고려한 합리적 판단이었다고 구태여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뛰는 선수들의 등판엔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누가 봐도 명징했다.

이번 사태는 노동 문제도, 독과점 문제도 아니고 투자·소유한 기업 주인들(주주)끼리의 싸움이었다. 형식은 ‘1원1표’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의결권 표대결이었으나 내용은 정치적 양상을 띠며 전개됐다. 그 결과,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17일 진앙지 주총장의 환호와 안도감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의 뒤편에선 주주의 이익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어느 자산운용사 임원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얘기가 들리는 등 여기저기서 상처와 탄식이 나온다.

애초 합병비율이라는 삼성 내부 문제였던 이번 사태는 ‘삼성체제’라는 사회적 문제로 그 성격이 전환되었다. 100여년 전 어느 경제학자는 “모든 독점이윤 중에서 최고의 것은 조용한 삶”이라고 갈파했다. 삼성이 이윤은 조용히 창출해왔더라도, 승계작업은 아버지가 27살 이재용씨에게 60억원을 증여한 1995년부터 격렬한 파열음을 내며 20년째 지속되고 있다. 삼성그룹의 기업가치(17개 상장기업 시가총액 330조원)에는 순이익 같은 경제지표 외에 “우리가 삼성에 부여하는 사회적 지위가 경제적 가치로 표현돼 포함된 것”이라는 설명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나는 믿는다. 찰스 윌슨 전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이 “지엠에 좋은 건 곧 국가에 좋은 것”이라고 말했듯 경제력 집중의 ‘삼성체제’는 이제 한국과 동일시되는 정도에 이르렀다.

기업(가)을 이해할 때 중요한 건 개인적 성격이나 행운, 자질뿐 아니라 부를 이룰 수 있도록 도운 사회의 정치·경제적 구조다. 이건희 회장이 예금한 돈이 달동네 아이의 교육투자에 쓰일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서민들이 좌판 행상으로 벌어 저금한 돈이 은행의 금융중개 기능을 거쳐 삼성을 키우는 대출금으로 흘러간다. 이렇게 획득한, 생산을 지휘하고 투자(일자리)를 결정·철회하는 경제적 지배권력을 등에 업고 삼성은 이번에 특정 기업이 맞닥뜨린 승계작업 과정의 위험을 전략적으로 ‘사회화’했다. 즉 대대적인 삼성물산 돕기 광고 집행이 보여주듯 경제적 이익보다는 사회적 관점에서 사태를 판단하도록 유도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 한국의 독특한 풍경은 ‘기업체제’로 변모한 한국 경제를 새삼 깨닫게 한다.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삼성은 “불에도 잘 녹지 않는 동전” 같은 하나의 제도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삼성체제’를 사회경제적으로 말끔하게 해명하거나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재벌’이 한국 토양에 최적화된 진화된 기업체제라는 주장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아직 신화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기업의 지배를 다시 한번 목도하며 다시 기업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kye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