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이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는 소식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동의보감은 2009년 7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선행연구를 통해 국내 후보 선정 및 신청, 등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주도하였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 또한 동의보감이 세계기록유산에 선정된 이후 당시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던 동의보감을 국보로 승격해야 한다는 의견을 각계에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보물이든 국보든 모두 우리 민족이 마땅히 보존해야 할 훌륭한 문화재임에는 변함이 없으며,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한 2건의 동의보감 완질 초간본 이외에도 국내에 소장된 초간본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추후 조사를 거쳐 한꺼번에 국보 지정을 심의하기로 하였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이번에 문화재청에서 이미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과 함께 규장각 소장본 2건을 국보로 지정한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올해는 의성 허준(1539~1615) 선생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라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동의보감은 7년에 걸친 임진·정유왜란을 겪으면서 집필되었다. 편찬을 완료하고 나서도 미처 목판으로 새기기도 전에 서북 지방부터 번지기 시작한 역병을 막기 위해 반포를 뒤로 미룬 채 방역서를 먼저 펴냈어야만 했다. 이때 급히 출간한 책이 바로 1613년에 연이어 나온 <벽역신방>과 <신찬벽온방>이다. 보물 1086호와 1087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계 최초로 성홍열에 대한 임상치료 기록을 남겼다는 <벽역신방>, 조선 중기 급성열병에 대한 독자적인 치료법을 제시한 <신찬벽온방>, 이들은 모두 한 권의 책으로서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다. 난생처음 마주했던 악독한 전염병과의 목숨을 건 싸움의 과정을 기록한 전사(戰史)이기도 하다.
해마다 종류를 달리하여 우리를 위협하는 각종 전염병은 이제 위험 수준을 넘어 집단공포심을 야기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염병 극복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땅에는 수천년간 전통을 이어온 한의학이 있고 우리에게는 선천적으로 각인된 질병 극복의 역사가 유전자로 남아 있다. 따라서 오늘날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허준이 펴낸 또 다른 의서들을 그저 전시관에 진열된 귀중본으로만 여기는 데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고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한 까닭은 후속 세대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글과 스마트폰에 익숙한 현세대들에게 억지로 고전을 읽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의보감>과 역대 고전의약서에 담긴 조상의 지혜와 전통의학의 노하우를 다가올 미래 세대가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의방유취>와 <향약집성방>으로부터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전통의약 지식을 후대에 전달할 수 있도록 의과학과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새로운 의학시스템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전통의약에 관한 모든 유무형의 지식 자료와 정보가 집적된 전통의약 아카이브센터가 필요하다. 장서는 없고 건물만 들어선다든지 정보시스템 설비만 앞장세우는 어리석은 일은 더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 영유권 분쟁이 발생한 이후에야 독도 자료를 뒤지고 동북공정이 생기자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연구해서는 다가올 환난에 대비하기 어려운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더 늦기 전에, 또 다른 역병이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기 전에 전통의학을 연구하는 일은 질병사에 있어서 율곡이 제안한 십만양병설에 비견되는 일일 것이다.
이혜정 한국한의학연구원장
이혜정 한국한의학연구원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