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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유럽을 향한 현대판 ‘게르만족 대이동’

등록 2015-08-06 18:30

로마의 붕괴는 고대 사상 최대의 난민 위기로 시작됐다. 서기 376년 현재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사이의 도나우강 북변에 고트족 20만명이 몰려들었다. 흑해 북쪽 연안에 살던 고트족이 유라시아 중앙에서 온 유목민 훈족의 침략에 밀려 난민으로 찾아왔다. 이들은 동로마 황제에게 도나우강을 넘어 제국의 영내로 들어가 살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동로마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과의 분쟁에 매달려 이 난민 위기에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추운 겨울을 참혹하게 보낸 고트족들은 2년 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동로마제국의 군대에게 한니발과의 전쟁 이후 최대 참패를 안겨줬다. 고트족은 서로마제국 영내까지 휩쓸었고, 이는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도나우강 북쪽에 살던 범게르만족들의 남하는 로마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로마는 북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이들 게르만족 거주지를 압박해, 이들을 로마 영내로 스며들게 했다. 특히 로마는 먼저 게르만족들을 용병으로 끌어다 썼다. 훈족의 침략에 직면한 게르만족들이 로마로 찾아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2014년에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오려던 난민과 불법 이민자들은 모두 21만9천명으로 전해에 비해 4배 늘었다. 이 과정에서 3500명이 숨졌다. 올해 1월부터 7월말까지 유럽에 도착한 비합법 이주자들은 15만9천명으로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9%가 늘었다. 올해 들어 18만명이 난민 신청을 한 독일에서는 난민 신청자에 대한 173건의 공격이 보고됐다. 전해 동기에 비해 2배다. <슈피겔>은 ‘추악한 독일인은 돌아왔나’라는 기사에서 독일에서 급증하는 인종주의와 이민자 공격을 보도했다. 영국은 유럽연합의 난민 정책에 불만을 터뜨리며 유럽연합 탈퇴를 경고하고 있다.

최근 유럽에 몰아치는 난민 사태는 1600년 전 로마가 직면한 위기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 유럽으로 밀려드는 난민과 불법 이민자 대부분은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였던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들이다. 로마가 자신들의 필요로 게르만족들을 압박하고 흡수한 것처럼, 유럽 제국들의 필요에 따라 이들 식민지 주민들이 유럽으로 오기 시작했다. 2차대전 뒤에는 독일이 경제개발에 필요한 노동력으로 터키 지역 이민자들을 대거 흡수했다.

둘째, 분쟁으로 난민과 불법 이민자 사태가 빅뱅처럼 터지고 있다. 훈족의 침략이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한 것처럼, 중동과 아프리카에 번지는 최근 전쟁 사태가 유럽으로 난민을 몰려들게 한다. 훈족의 침략은 로마의 책임이 아니었지만,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전쟁 책임에서 유럽은 자유롭지 않다. 이 전쟁들의 원인인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은 서구 식민주의 부산물의 하나이다. 특히 유럽 난민 사태를 격화한 리비아 내전에는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 책임이 크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습을 주도하며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타도했을 뿐, 그 후로는 ‘나 몰라라’ 하며 아무런 대책도 없다.

게르만족 대이동은 크게 보면 인류사에 점철된 인류 이동의 일환이다. 자원과 인구 불균형을 해소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유럽 이주자들을 쏟아내고 있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권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성장하고, 젊은층 인구가 50% 안팎으로 가장 많은 곳이다. 잭 골드스톤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 ‘새로운 인구폭탄’에서 이슬람권 국가들의 역동적 인구성장은 서방과 동북아 지역 고령화와 맞물려 21세기의 재앙 혹은 축복이 될 거라고 예견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1600년 전 난민들이었던 게르만족들이 이제 난민 위기를 해결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재앙이 되느냐 축복이 되느냐는 그들의 대처에 달렸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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