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지난 8월25일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의미있는 합의를 했다. 모처럼의 합의가 결실을 맺도록 남과 북 모두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나는 각 분야 교류협력을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서울과 평양에 남북 경제단체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전경련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고 주장한다.
전경련의 지난 7월 제안은 민족경제 건설과 그에 따른 민족통일을 촉구하는 경제인들의 통일 촉구 선언이나 다름없다. 간접적으로 하루속히 5·24 조치를 해제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무덤에서 일어나 7·4 공동성명을 실행하지 않고 무엇하는가, 하고 그 따님 박근혜 대통령에게 호통치는 소리이며, 김대중 대통령이 부활하셔서 하루속히 6·15 남북공동선언을 힘차게 실행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과 진배없다.
전경련이 어떤 단체인가?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경제적 토대가 아닌가. 이 전경련이 정부 차원의 남북 협의기구도 아직 없는 터에, 그리고 5·24 조치가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남북 경제단체 연락사무소를 제안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호소와 같은 것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반공체제에 힘입어 성장 발전해온 우리 경제가 이 체제 가지고는 더 살찌울 수 없다는 진단이다. 이제 이 반공체제가 오히려 경제 생산력을 저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되었다는 뜻이다.
정치권력 앞에는 한없이 약한 게 경제인이요 그 경제단체인데, 얼마나 애가 타고 절박했으면 사정(국가보안법, 5·24 조치 등)에 의해서 금지된 경기장에 뛰어들었을까. 하기야 자본이란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법망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생리이고 보면 고도성장으로 승승장구했던 우리 경제가 중국 쇼크 등으로 새로운 출구를 넘보는 것은 극히 필연적인 역사의 흐름이다. 돌아가신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몰고 고향을 찾은 일이 새삼 즐겁게 떠오른다.
연락사무소 개설에 따른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살펴보자.(<한겨레> 7월16일치 2면)
1. 전경련은 평양, 북쪽 조선경제개발협회는 서울에 각각 연락사무소 설치 2. 한반도 서부축 경제협력 루트 확보 3. 남북 접경지역 경제협력사업 재개 및 확장 4. 남북 경제협력 신규 산업단지 개발 5. 북한 기업 살리기 프로젝트 등 6. 북한 산업기술인력 양성 7. 동북아 다자 경제협력사업 등.
참으로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이다. 짙은 구름 사이를 뚫고 내비치는 한줄기 섬광처럼 빛나는 제안이다. 전경련은 우리 경제의 절실한 필요, 즉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기 위함이라고 했다. 북측도 시장화와 개혁 확대를 꾀하고 있는 만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남남북녀란 말대로 사람에 빗댄다면 찰떡궁합 아닌가. 상품이 들어서 전근대적 봉건적 장벽을 뚫어냈듯이 전경련의 제안이야말로 남북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계기가 될 것은 물론이요, 우리 민족의 번영을 도모할 토대가 될 것이다. 남쪽도 북쪽도 기존 체제로는 더 발전할 수 없는 한계에 임했다고 볼 때 이 제안이야말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란 여유 있는 제안이 아니다. 안 하면 죽는다는 백척간두에 선 배수진에서의 외침 같은 것이다.
전경련이 현실의 법률적 장애를 초월하고 나섰다는 것은 경천동지할 사변이나 다름없다. 이 땅의 모든 지도자는 전경련의 제안을 역사의 흐름을 바로 이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안을 선점하는 정치세력이 다음 정권의 담당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배다지 부산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
배다지 부산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