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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9·12 장그래희망버스를 타자 / 권영국

등록 2015-09-07 18:50

오는 12일이면 거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강병재씨가 옥포조선소 내에 위치한 50m 크레인에 올라간 지 157일째, 막걸리 제조회사인 부산 생탁 노동자 송복남씨와 부산 한남교통 택시노동자 심정보씨가 부산시청 앞 좁은 광고탑(1m×3m) 위에 오른 지 150일째 되는 날이다. 또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정명, 한규협씨가 서울 무교동 소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위 광고탑에 오른 지 94일째다.

강병재씨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자꾸 죽어나가자 대응하려고 2007년 하청노동자들의 연대조직 결성을 주도했다. 그러자 그가 소속된 하청업체가 폐업했다. 그가 45m 높이 송전탑에 오르자, 사실상 원청을 대신한 사내협력사협의회 대표는 ‘2012년 12월까지 채용’을 약속했고 그는 88일째 내려왔다. 그러나 4년이 흐르도록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올해 쉰두살인 그는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고3 딸아이를 남겨두고 다시 80m 크레인에 올랐다.

부산일반노조 생탁 현장위원회 송복남 총무부장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 소속 심정보 택시노동자가 부산시청 앞 전광판 위에서 함께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소수노조에 대한 교섭권 박탈이라는 위헌적인 현행 법제도에 기인한다. 생탁 장림공장 노동자 45명이 민주노조를 만들어 ‘시간 외 근무 수당 지급, 공휴일 휴무 보장, 주5일 근무 실시,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사용자의 개입으로 제2노조인 기업노조(회사노조)가 만들어졌다. 그 뒤 사측의 회유와 협박으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기업노조로 넘어갔다. 민주노조는 소수노조로 전락했고 다수노조가 된 기업노조에 교섭권을 빼앗기고 노조 탄압에 직면했다. 한남교통 택시노동자들은 위법한 사납금제도에 맞서 전액관리제 도입과 사용자가 가로챈 ‘근로자 복지용’ 부가세 경감분 환수를 요구하며 민주노조를 설립했으나 소수노조라는 지위로 인해 교섭권을 갖지 못하고 소속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적 탄압으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

또 현대·기아차 모든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법원의 잇단 판결에도 현대·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사내하청 노동자 중 일부를 발탁·채용하는 방식으로 판결을 우롱하며 어떠한 형사적·행정적 제재도 받지 않은 채 불법파견을 계속하고 있다. 최정명, 한규협씨는 정 회장에게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기 위해 전광판에 오른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기업들은 더 이상 “법도 안 지켜, 사회적 약속도 안 지켜, 노조를 인정 안 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자본에 의한 불법파견, 약속 불이행, 노조 불인정 현실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한편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 해고와 노동자 동의 없는 임금체계 개편을 가능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을 밀어붙이고 있다. ‘박근혜표 노동개혁’이 관철된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노동자들은 해고와 임금 삭감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법적 수단을 잃게 되고, 항시적인 고용불안에 직면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권영국 변호사·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본부장
권영국 변호사·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본부장
하늘에 오른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은 그 정당한 요구에 대해 끝내 침묵하고 있는 박근혜표 노동개혁의 반노동자성과 허구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거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고공으로 올라간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하늘에 오른 노동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해서, 그리고 기업에는 종합선물을 선사하고 노동자에게는 생지옥을 강요하는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 시민들이 함께 일어서야 한다. 부산과 거제로 출발하는 ‘9월12일 장그래희망버스’를 타고 이렇게 외쳐보자. “비정규직 이제 그만, 노동개악 중단하고 노동자를 일터로.”

권영국 변호사·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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