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문학동네의 길, 창비의 길

등록 2015-09-10 18:54수정 2015-09-10 19:26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문학동네 쇄신 방침은 문단 안팎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문학동네를 창립 20여년 만에 한국 최고의 문학출판사로 키운 강태형 대표와 1세대 편집위원들의 동반 퇴진 결정에 그동안 이 출판사에 비판적이었던 이들 사이에서도 감탄과 지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충격적이지만 참으로 신선하다. 고맙다”는 페이스북 글을 올린 소설가이자 실천문학사 대표 김남일이 대표적이다.

물론 문학동네의 쇄신 가능성에 유보적인 견해도 없지 않다. 특히 잡지 <문학동네> 가을호가 나온 뒤 거기 실린 편집위원 권희철의 권두언을 읽은 이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반응이 불거져 나왔다. 문학권력 비판론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최근 사태의 발단이 된 신경숙의 표절 작품을 교묘하게 감싸는 듯한 언사는 표절과 관련한 사과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문학동네의 변화 움직임이 일단 고무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에서 문학동네와 함께 표적이 된 창비의 대응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잡지 <문학동네>가 평론가들 기고와 작가 좌담을 통해 사태를 정면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인 데 비해 <창작과비평> 가을호는 무성의하게 느껴졌다. ‘표절 문제와 문학권력’이라 이름 붙인 긴급기획에 실린 글 세 편은 지난여름 토론회에서 발표된 것이거나 한국작가회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연재했던 것이어서 새롭지 않았다. 백영서 편집주간의 발간사도 사과보다는 변명에 가까워 보였다.

창비 편집인 백낙청 선생이 잡지 발간 뒤 페이스북 글을 통해 신경숙의 표절이 ‘의도적 베껴쓰기’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은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킨 느낌이다. 표절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묘사한 이응준의 고발 글이 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태의 본질이 표절의 ‘의도’ 여부에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비록 보도 과정에는 문제가 있지만, 박민규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낮잠’ 표절 주장에 대해 보인 솔직하고 담대한 태도와 대비되어 보였다.

백낙청 선생은 창비가 내년 초 계간지 창간 50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쇄신을 위한 준비를 일찍부터 해왔”노라고 밝혔다. 독자로서 그에 기대를 품고 응원을 보내야 마땅하겠으나, 주변을 둘러보면 기대보다는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더 많아 보인다. 가장 큰 까닭은 백영서 주간이 발간사에서도 강조한바 ‘창조와 저항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창비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판단에 있다.

1990년대 이후 진보문학의 약화에는 창비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문학동네> 작가 좌담에서 이 잡지 편집위원인 신형철은 “출판사들 사이의 문학적 취향과 입장 사이에 교집합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것이 창비가 진보적 문학관이라는 자기 중심을 놓치고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 쪽에 ‘투항’한 결과라고 본다. 그렇게 해서 출판사 창비는 성공을 거두었을지 몰라도, 진보 문학의 맏형이라는 이념적 구실에는 실패했다.

문제는 ‘저항’의 약화에만 있지 않다. ‘창조’ 쪽을 들여다봐도 창비의 부실과 빈약은 눈에 뚜렷이 들어온다. 90년대 중반 이후 창비가 선택해서 한국 문학의 중심에 내보낸 작가가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문학과지성사나 문학동네 쪽에서 배출하거나 ‘발탁’한 작가를 뒤늦게 추인하고 포섭하는 방식 아니었던가. 그것이 창비다운 저항의 색깔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져 왔다.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창비가 ‘창조와 저항의 거점’으로서 제 역할을 되찾기 위해서도, 다양성과 토론이 살아 있는 문학 생태계의 구축을 위해서도 ‘창비 반세기’의 쇄신은 발본적이고 근원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상법개정 반대 ‘궤변’, 1400만 투자자가 바보인가 [아침햇발] 1.

상법개정 반대 ‘궤변’, 1400만 투자자가 바보인가 [아침햇발]

가상자산 과세,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2.

가상자산 과세,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범죄·코믹·판타지 버무렸다…볼리우드식 K드라마의 탄생 3.

범죄·코믹·판타지 버무렸다…볼리우드식 K드라마의 탄생

우크라이나 전쟁발 가짜뉴스에 돈 내야 할 한국 4.

우크라이나 전쟁발 가짜뉴스에 돈 내야 할 한국

한 대표, ‘당게’ 논란 연계 말고 ‘김건희 특검법’ 당당히 찬성해야 [사설] 5.

한 대표, ‘당게’ 논란 연계 말고 ‘김건희 특검법’ 당당히 찬성해야 [사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