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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안철수가 부산에 출마해야 하는 이유 / 김의겸

등록 2015-09-30 18:29

지난주 <한겨레> 토요판에는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의 글이 실렸다. 안철수에게 주는 조언인데 ‘문재인과 치열하게 싸워라. 문재인이 총선에서 지면 그땐 안철수의 시간이 온다’쯤으로 요약된다. 손님을 모셔서 귀한 글을 받아 놓고는 비판을 해대는 게 얼마나 야박한 짓인지 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길’ 같아 몇자 적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당내에서 치열하게 경쟁한 결과 강한 비토 층이 형성되더라도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 야당 지지층은 다 흡수할 수 있다”는 박성민의 진단에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야당은 정치인들만 분열된 게 아니다. 그 지지자들까지 나뉘어 거대한 패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댓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로들 핏발 선 저주를 퍼붓고 있다. 상대방이 잘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새누리당을 찍겠다는 투다.

여당 의원들도 친박-비박으로 갈려 박 터지게 싸운다. 그래도 지지자들은 “이기는 게 우리 편”이라며 느긋하게 관전한다. 실제로 여당은 아무리 내분이 일어도 좀체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야당 지지율은 분란이 일 때마다 푹푹 꺼져 버리고 만다. 친구가 원수 되는 법이다. 야당 지지자들끼리 주고받는 상처가 너무 깊다. 치유가 불가능한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안철수는 문재인과 ‘혁신 경쟁’을 벌이겠다고 한다. 다 좋다. 하지만 내용보다 중요한 게 타이밍이다. 찢어진 당을 이제 겨우 꿰매 놓았더니 또다시 실밥이 터지려는 시점이다. 공천이 불안한 세력들은 여전히 문재인에게 돌을 던지려고 벼르는데 마침 안철수가 나선다. 숨어서 팔매질하기에는 안철수의 등 뒤만한 곳이 없다. 물론 안철수는 그들을 감싸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내 구도가 그렇게 짜이고 있다. 정치판에서 선량한 의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이 안철수 아니던가.

박성민은 “총선에서 참패하거나 적어도 현재보다 의석이 줄어든다면 그다음은 안철수의 시간”이라고 예상한다. 아닐 것이다. 박원순이 우선한다. 여론조사가 말해준다. 문재인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박원순이 오르고, 문재인이 오르면 박원순은 빠진다. 둘은 서로 대체재다. 지지층이 양쪽을 부담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반면 안철수는 외따로 떨어져 한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러 있다. 왜 그런가. 지난 대선 때 단일화 과정이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뭔가 흔쾌하지 않았던 모습에 옛 민주당 지지층은 께름칙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나온 금태섭 변호사의 책은 이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이 상태로는 안철수가 문재인과 치열하게 싸우면 싸울수록 그 과실은 박원순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뿐이다.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다. 그러니 지금 안철수에게 가장 시급한 건 문재인·박원순 지지자들과 자신 사이에 놓여 있는 심리적 벽을 허무는 거다. 그러려면 부산으로 내려가는 게 최고다. 물론 문재인과 함께 말이다.

이른바 ‘친노’의 본거지인 부산에서 함께 뒹굴며 하나가 돼야 한다. 대선 때 뭔가 허전했던 공동유세를 이번에는 본때 나게 해보는 거다. 문재인에게 협조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씻김굿을 통해 문재인 지지자들의 마음을 통째로 훔쳐 오라는 거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이기고 지고는 다음 문제다. 전체 선거판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헌신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갈가리 찢겨 있는 지지자들을 하나로 모으고 그들의 가슴에 확 불을 지르는 것, 그게 안철수가 해야 할 일이다.

김의겸 선임기자
김의겸 선임기자
박성민의 글 제목은 ‘이제 뭔가를 보여줘라’다. 그 ‘뭔가’는 문재인과의 ‘혁신 경쟁’이 아니라 ‘헌신 경쟁’이 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게 안철수도 살고 당도 사는 길이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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