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총리, ‘헬조선’이 뭔지 아세요.”(윤호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들어본 적 없습니다.”(최경환 경제부총리)
지난달 15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의 한 장면이다.
‘헬조선’은 영어 헬(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신조어다. 한마디로 지금의 한국 사회는 희망이 전혀 없어 지옥 같다는 얘기다. 비슷한 말로 ‘조선불반도’ ‘불지옥반도’ ‘개한민국’ ‘망한민국’ 등이 있다. 모두 다 극심한 취업난과 권력·돈을 내세운 갑질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이전의 ‘이태백’ ‘삼포세대’ ‘인구론’ ‘청년실신’ 같은 신조어보다 더 직설적이고 격하다. 청년세대가 느끼는 좌절감이 훨씬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은 영상 국무회의를 통해 “저를 비롯한 국무위원 여러분들과 사회 지도층, 그리고 각계 여러분이 앞장서서 서로 나누면서 청년 고용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청년 고용을 위한 재원 마련에 저부터 단초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튿날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어 박 대통령의 제안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며 “청년희망펀드를 통해 청년들에게 큰 희망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최경환 부총리 등 장차관과 새누리당 지도부, 각계 유력인사들이 펀드에 속속 가입했다.
하지만 청년희망펀드는 시작부터 즉흥성·강제성·전시성·옥상옥 등 곳곳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실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는 심각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에서 내놨을 것이라고 이해는 됐다.
진짜 문제는 이처럼 겉으론 청년들을 생각해주는 척하면서 뒤에선 늘 배신감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이른바 ‘최경환 인턴의 기적’이 그렇다.
‘채용 비리’는 청년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범죄다. 최근에도 채용 비리가 여러 건 드러났지만 최 부총리의 사례는 ‘압권’이다. 최 부총리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하던 시절, 중소기업진흥공단은 그의 인턴 출신을 신입 직원으로 뽑기 위해 점수 조작과 합격자 수 늘리기 등 온갖 부정을 동원했다. 인턴 출신은 이렇게 서류 전형을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독립적인 외부 면접위원이 ‘채용 불가’ 의견을 내 제동이 걸렸다. 중소기업진흥공단도 더는 어쩔 수 없었던지 부이사장이 최 원내대표의 보좌관에게 “합격이 어렵다”고 전했다. 하지만 압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보좌관은 “이사장이 직접 와서 의원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이사장이 최 원내대표를 만난 뒤 ‘기적의 인턴’은 ‘125 대 1’이라는 바늘구멍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다. 자기소개서를 수없이 고쳐쓰고 밤을 새워 면접 준비를 해온 누군가가 대신 탈락했다.
단순한 의혹 제기가 아니다. 감사원의 ‘중소기업진흥공단 채용 비리 감사 보고서’에 담긴 사실이다.
그런데도 최 부총리는 “어떤 청탁이나 영향력을 행사한 일이 전혀 없다”는 해명자료를 두 차례나 냈다. ‘합격이 어렵다’는 보고를 받고 이사장을 자기 방으로 불렀는데 아무 얘기도 안 했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또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으로 소모적 논쟁을 이어가지 말고 검찰 수사 결과를 차분히 지켜보자”고 주장한다. 검찰이 박근혜 정권의 최고 실세인 그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감사원이 모든 사실관계를 파악해놓고도 그를 보호하기 위해 ‘꼬리 자르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검찰 수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참석을 위해 페루에 가 있는 최 부총리가 13일 귀국한다. 돌아오면 진실을 밝히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취업난을 풀어야 할 경제부총리가 청년들에게 피눈물을 쏟게 해서야 되겠는가.
안재승 경제 에디터 jsahn@hani.co.kr
안재승 경제 에디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