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징 대학살 관련 자료가 등록된 것에 일본 정부가 항의했다. 중국이 주장하는 ‘희생자 30만명’에 이견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뿐 아니라 정부와 자민당의 핵심 관계자들은 유네스코에 대한 분담금의 지급을 정지하는 문제까지 언급했다. 자민당의 하라다 요시아키 중의원 의원은 난징 대학살과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일본이 이제 부정하고 있는데도, 중국 정부가 등록을 신청한 것을 승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들을 부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중-일 전쟁 중에 일본이 난징을 공략할 때 많은 포로와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위안부의 존재도 사실이다. 국회의 다수당인 자민당이 아무리 강하게 부정한다 해도 사실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의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현재 자민당 정치가 가운데 보통의 지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뜻이 된다.
독일의 정상이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대인 집단학살)의 희생자 수는 유대인 단체가 주장하는 것보다 더 적었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여당 정치가가 홀로코스트는 없었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독일은 곧바로 세계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을 것이다. 현대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역사성을 갖고 있고, 가해국이 자국의 죄(잘못)를 깔끔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되지 못한다.
난 국민의식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국민의식이 민주주의나 자유와 양립하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민주정치엔 어느 정도의 국민적 일체성이 필요하다. 민주정치에선 국민이 정부에 세금을 내고, 정치 참여에 의해 그 세금의 재분배 방법을 정해 일정 정도의 평등을 추구한다. 자신이 낸 세금이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없이 민주정치는 성립되지 않는다. 타인을 위해 자신이 낸 세금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국민적 일체성이다.
물론 국적에 관계없이 가난한 사람과 재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도와야 한다. 또 국민을 좁게 정의하지 말고 ‘인종이나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같은 지역에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개념을)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더라도 민주정치를 지탱하는 사람들 사이에 공동성(共同性)의 감각은 필요한 것이다.
현재 일본에선 (외국에 대해서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공동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때 유행한 ‘유대’(기즈나)란 말은 지금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재민, 특히 원전 사고 이재민에 대한 동정도 옅어지고 있다. 정부는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의 귀환을 추진하기 위해 (이들 가운데 정부 정책 등을) 비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끊으려 하고 있다. 이 냉혹한 정책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키나와에선 나고시 헤노코에 새로운 미군기지를 만들려는 것에 대해 현민들이 뜻을 모아 항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의 고압적인 자세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안보법제 반대의 여론만큼 높아지지 않는다.
자민당의 우파 정치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불합리한 고난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동포에게는 냉담하지만, 식민지배를 하거나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는 열심이다. 물론, 자신의 형편에 좋게 역사를 고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런 자기중심적 국가는 세계에서 가벼이 여김을 당하고 고립을 당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아베 총리 등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점에 대해선 별로 우려하지 않는다.
2018년부터 초·중학교에서 도덕이 교과 과목이 되어, 문부과학성이 애국심 등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내용을 정한 학습지도요령을 확정했다. 정치 지도자가 이대로라면 사실을 존중하고 자국의 죄를 겸허히 직시하는 것은 후퇴하고, 섣불리 자국을 정당화하는 것을 애국심이라 부르는 태도가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교육이든 경제든 ‘글로벌화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지만, 일본인은 세계에 등을 돌리고 점점 좁은 방에 틀어박히려 하고 있다.
야마구치 지로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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